김남현 금융전문기자
이달 21일이면 영면에 든 지 꼭 20주기가 되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명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확산) 이후 뉴노멀 시대 이 같은 정주영 정신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의 관심은 한국은행이 국고채 단순매입을 언제 해줄 것이냐로 쏠리는 분위기다.
최근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금리는 상승세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미국채 금리가 급등한 데다, 추경 편성에 따른 물량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를 넘나드는 중으로 금리 수준만 보면 2년 만에 최고치이고, 한은 기준금리와의 격차로 보면 10여 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시장금리 상승은 곧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의 이자상환 부담 증가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한은이 국고채 직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기획재정부와 한은은 이를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단순매입과 직매입은 한은이 유통시장에서 국고채를 매입하느냐, 아니면 발행시장 혹은 기재부와 직거래를 통해 국고채를 인수하느냐의 차이다. 전자가 단순매입이고, 후자가 직매입이다.
앞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한은이 매입하는 방안을 명시했다. 다만, 이 같은 법이 아니더라도 한은은 국고채를 직매입할 수 있다. 대정부 여신 등을 규정한 한은법 제75조에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입장인 기재부와 한은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 재정의 화폐화 문제로 주요국에서도 이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엔 전례가 없다는 점, 중앙은행 독립성과 함께 대외신인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꼽았다.
재정의 화폐화 문제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해 재정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경제성장을 위해 확대재정 욕구가 큰 게 정권의 속성이고 보면 옳은 소리다. 다만, 지금은 유례없다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QE)까지 나서고 있다. 한은도 지난해 3월 3년 4개월 만에 시장안정용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 데 이어, 9월엔 사상 처음으로 단순매입 일정에 대한 사전안내를 공지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바 있다. 선진국의 QE나 지난해 한은 단순매입이나 따지고 보면 시장을 거쳐 희석시켰을 뿐, 사실상 재정의 화폐화나 다름없다.
최근 전례가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1997년 12월 정부보증채 7조5000억 원을 끝으로 직접 인수를 해오지 않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 “그때는 정부의 재정 기반이 매우 취약했고, 국채시장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반면, 최근 전례가 없기로는 지난해 한은이 실시한 비우량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투자를 위한 산업은행 매입기구(SPV) 대출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그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한은법 제80조 영리기업 여신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중앙은행 독립성과 대외신인도 역시 달리 생각해볼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는 정부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모해왔다. 중앙은행 역할이 되레 정부를 뛰어넘고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미 재무부장관 이름은 몰라도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제롬 파월로 이어지는 미 연준(Fed) 의장 이름은 낯익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채권시장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다. 2010년 초 50조 원대로 5% 중반에 그치던 외국인의 원화채 보유 규모와 비중도 올 1월 말 151조5000억 원, 7.3%대로 늘었다. 기재부는 국고채 전문딜러(PD)협의회, 한은은 채권시장협의회를 대표로하는 시장과의 각종 의사소통 수단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직매입은 시장금리 안정과 수익률곡선 왜곡 방지에 더 효과적이다. 시장 자체에 물량이 나오지 않는 데다, 시장 안정을 위한 단순매입 시 지표물이나 국채선물 바스켓물(만기 시 최종결제기준 채권)이 포함될 수밖에 없어 경과물과 금리 역전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자꾸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