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섹시해야…일반 청중 귀 열게 하고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건 장르나 시대가 아닌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클래식"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양인모는 이날 2집 앨범 '현의 유전학'을 발매했다. 2018년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실황 음반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앨범이 2015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그의 선언과 같았다면, 이번 앨범은 양인모의 음악적 정체성과 방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저는 파가니니 앨범 이후 저만의 방향성을 찾고 싶었습니다. 저만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죠.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생긴 제 손가락의 철사 자국이 보여주듯 '현'이라는 물질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현의 역사는 '텐션'(긴장)의 역사입니다. 이번 앨범을 통해 현의 성질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보여주려 합니다."
앨범에는 힐데가르트 폰 빙겐의 'O ignis Spiritus paracliti'(불의 기원), 니콜라 마티아스의 '환상곡 a단조',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라폴리아', 로디온 셰드린의 'Gypsy Melody'(집시 멜로디), 요한 할보르센의 Sarabande con variazioni(사라방드와 변주곡), 라벨의 Tzigane with Marion Ravot harp(치간느), 살바토레 시아리노의 'Capriccio No. 2'(카프리치오 2번), 피아졸라의 '탱고의 역사'까지 방대한 음악의 스펙트럼이 담겼다.
양인모는 앨범 타이틀곡으로 코렐리의 '라폴리아'와 라벨의 '치간느'를 꼽았다. 애착가는 곡은 첫 번째 트랙과 셰드린의 '집시 멜로디', 라벨의 '치간느'다. 이유는 "새로운 곡으로 거듭난 것 같아서"다.
"'라폴리아'를 연주할 때 처음으로 바로크 세팅으로 했어요. 하프시코드에 바로크 첼로, 그리고 바로크 현의 사용이 그것이죠. 그 작업 과정에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평소 생각하던 비브라토의 개념도 깨졌고, 즉흥적인 요소를 많이 반영했거든요. 연주자끼리 의지해야 하는데 서로의 소리를 듣고 서로의 경향을 파악하는 작업이 신선하더라고요."
앨범의 첫 트랙인 힐가르트 작품엔 원곡에는 없는 바이올린 파트가 새롭게 추가됐다. '불'에 영감을 받은 양인모가 창작한 부분이다.
"인간은 불을 지피면서 현, 즉 줄을 시작하게 됐어요. 활비비로 불을 내기 시작하는 마찰력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불에 대해 첫 앨범을 하고 싶었죠. 하지만 불에 대한 곡이 많진 않더라고요. 창작힐데가르트 폰 빙겐이 불에 대한 찬양곡을 썼는데, 여기에서 불은 성령이었어요. 어쨌든 작곡가이자 예언자였던 힐데가르드가 불에 대한 찬양을 하는 걸 보고 이 멜로디를 쓰고 싶어졌어요. 당시 음악은 성악 중심이어서 바이올린 파트를 추가한 거예요. 거기에 창작욕이 생기면서 멜로디에 화성도 붙이고 즉흥적인 요소를 많이 넣었습니다. 노래는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님의 목소리로 채웠죠."
양인모는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앨범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베를린에 간 거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연주자를 어떻게 찾을지도 막막했어요. 장소 마련도 어려웠죠. 그래서 11월 30일 입국해야 했는데 29일에서야 녹음을 마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베를린의 역사와 정취에 취해 만족스러운 녹음이 나왔습니다."
양인모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13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종호,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 피아니스트 홍사헌과 함께 무대에 선다.
"앞으로도 많은 시도를 하고 싶어요. 클래식함은 클래식에만 있지 않아요. 다른 곳에서도 클래식을 찾을 거고, 클래식을 다시 정의하고 싶어요. 연주자인 저는 해석자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