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ㆍ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농지법 제3조의 2)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갖는다'는 경자유전. 이 원칙은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헌법 정신이다. 식량 공급 및 환경 보전을 위한 땅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시작된 농지 투기 논란은 대한민국에 경자유전 정신을 다시 묻고 있다.
지자체 농지 취득 심사 '하나마나'…수도권 농지 90%가 부재지주가 소유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간 경찰에 적발된 농지법 위반 사례는 3880건에 이른다. 대부분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하거나 불법 용도 변경ㆍ임대한 경우다. 이번에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에서만 최근 수십 명이 농지 불법 전용하거나 방치한 것이 드러나 처분 명령을 받았다.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대부분 농지는 경작 계획을 허가를 받아야 취득할 수 있지만 실상은 요식에 그치고 있다. 2010년 농지관리위원회가 폐지되면서 농지 취득 절차는 더 간소해졌다. 투기 의혹이 제기된 LH 직원들도 벼농사를 짓겠다고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농지 취득을 허용받았다.
조병옥 농어업ㆍ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농지제도개선 소분과장은 "일선 지자체 농지 담당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검토가 요식에 그치고 있다. 위반이 확인돼도 제대로 된 행정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합법적으로 토지를 임대하는 부재(不在 )지주도 늘고 있다. 수차례 규제 완화를 거치면서 상속, 이농, 주말농장 등 합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늘고 있어서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지방 농지는 50%, 수도권 농지는 90%가 외지인이 보유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농지의 43.8%(73만5000㏊)를 비(非)농업인이 갖고 있다. 도시 인근 주말농장만 해도 1000㎡(303평)까지 비농업인 농지 취득이 허용되기 때문에 농지 취득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허술한 제도 운용은 농지를 투기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전답ㆍ임야를 택지로 개발하는 일이 늘면서 농지가 알만한 사람은 아는 최고 투자처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해 농특위는 경기도에서 4000여 필지를 표본조사했는데, 이 중 1458필지에서 취득 후 2년 내 용도 전용(轉用) 등 투기 정황이 파악됐다.
게다가 농지가 개발되면 땅값에 더해 지장물(공공사업을 위해 이전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물건) 보상을 받을 수 있어서 투기 차익을 더욱 키울 수 있다.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이 보상금을 후하게 받는 희귀 묘목을 심은 것도 이를 노린 포석이다.
투기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 몫으로
투기 피해는 정직하게 땅을 일구는 농민에게까지 미친다. 농지가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농지 가격이 오르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농지 가격은 15.6% 상승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9년 낸 보고서에서 "농지 가격 상승 원인으로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와 불로소득 환수 미흡이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더 이상 방치하면 농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농민단체에선 농지 투기 방지책을 요구하고 있다. 농민단체 연합체인 농민의길은 1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농지 소유 실태 전수조사를 즉각 시행하고 농민이 아닌 사람이 불법 소유 중인 농지를 매입해 농지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 분과장은 "농지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제한하고 부재지주 허용 기준도 지금보다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의 농지 매입, 영농 경력이 없는 비영농인의 농지 취득 제한 제도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동현 농림축산식품부 농지과장은 "이번 일과 별도로 농지 제도 개선을 농특위와 논의하고 있었다"며 "취득 절차 등 농지 관리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