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어 논문, 오히려 위안부 진실 알릴 기회” “中 문화 공정, 당국의 조직적인 움직임 있어” “국제적 여론 형성해 中日 압박해야”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죠. 하지만 오히려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에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일본을 압박해야 합니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최근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며 역사를 왜곡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 사태에 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 알리미’로 유명한 서 교수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램지어 교수의 역사 왜곡에 이어 김치·한복 등을 자신들의 문화라 주장하는 중국의 ‘문화공정’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서 교수는 최근 램지어 교수의 실체를 알리는 메일을 미국 상·하원 의원 535명에게 보냈다.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으로 표기한 중국 포털 바이두에 항의 메일을 보냈으며, 중국의 ‘김치 공정’에 항의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한국 홍보전문가인 서 교수는 일본과 중국의 도 넘는 역사 왜곡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투데이는 10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성신관 연구실에서 서 교수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램지어 논문, 어이 없다…오히려 위안부 진실 알릴 기회”
서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 사태에 대해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사실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논문을 게재한 점이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서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 인용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서명한 어떠한 계약서도 증거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각에서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두고 ‘학문적 자유’라고 했다는데, 논문에 게재한 내용의 사실 여부도 확인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램지어 교수의 직함이 ‘미쓰비시 일본 법학교수’임을 언급하면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가 이번 논란에 연관돼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램지어 교수는 대표적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1970년대 하버드대에 조성한 150만 달러의 기부금으로 임용된 인물이다. 서 교수는 “이번 일을 통해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이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알겠더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램지어 논문’ 사태가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세계적인 관심과 여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을 더욱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2007년에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 결의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이후 위안부 역사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조금 사그라든 상황”이라면서 “램지어 논문 논란으로 인해 CNN·뉴욕타임스 등에서 연일 기사화가 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해 일본 정부를 압박한다면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문화 공정은 한류에 대한 견제”=서 교수는 한복·김치 등 우리나라의 고유문화를 중국의 문화라 주장하는 이른바 ‘문화공정’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 교수는 “중국 문화공정의 특징은 환구시보 등 관영 매체를 통해 먼저 시작된다는 점”이라며 “최근에는 유엔 주재 중국 대사까지 나서 직접 김치 담그는 영상을 찍어 SNS에 게시한 적도 있다. 정부 측에서 먼저 이슈화를 시키면 그 뒤로 웨이보·유튜브 등의 인플루언서를 통해 퍼져 나간다”고 설명했다. ‘문화 공정’의 배경에 중국 정부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최근 중국이 문화공정에 나선 이유에 대해 “서양의 관점에서 ‘아시아 문화’를 떠올리면 예전에는 중국을 꼽았는데 최근에는 K-팝, K-드라마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아시아권 트렌드를 한국이 주도하는 양상에 위기감을 느끼고 견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치에 관한 문화공정에 대해선 “코로나19 시대에 김치가 면역력 효과로 인기몰이하고 있는데 이럴 때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고 주장하고 중국산 김치를 세계에 수출해 더욱 많은 이윤을 획득하고자 하는 경제적인 꼼수도 보인다”고 했다.
문화공정의 잘못된 점을 계속해서 지적해온 서경덕 교수는 최근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SNS, 이메일, 심지어는 연구실 전화로 ’욕설 테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요즘은 중국인들의 항의 메시지를 지우는 것이 일상이 됐다”며 “일본의 역사 왜곡을 지적할 당시에도 일본인들의 항의 연락을 많이 받아 사실 익숙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세계적인 여론 형성해 일본·중국 압박해야…홍보는 타이밍”=한편으로는 아무리 세계적인 홍보를 해도 일본과 중국이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그동안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 등 세계적인 유력 매체에 광고 캠페인을 꾸준히 했던 이유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제대로 알리자는 것”이라며 “아무리 경제 대국인 두 나라라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여론이 형성되면 이길 수 없다. 세계적인 여론을 통해 일본·중국 정부를 압박해나가는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홍보’의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타이밍’을 꼽았다. 그는 “홍보만 25년 넘게 하고 있는데 정말로 열심히 준비해서 좀 더 세게 터지길 바랐던 것이 안 터질 때도 있고 쉽지 않겠다고 했던 게 의외로 세게 터질 때도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 램지어 교수 관련 메일을 보낸 이유도 지금 관심을 가질 때여서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서 교수의 홍보 방식이 ‘민족주의’로 대표되는 이른바 ‘국뽕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견도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제 홍보의 가장 큰 특징은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고 객관화가 될 수 있도록 외국인과 소통을 통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는 점이다. 이번에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김치 광고도 외국인들에게 테스트하는 등 사전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국 알리미’인 서 교수의 올해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코로나19 집단 면역이 올해 말쯤 돼야 한다는데 당장 오프라인 행사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 쪽에서 외국인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며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세계인들이 볼 수 있도록 김치에 대한 다국어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