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를 통해 재원 마련한다는 복안
법인세율 28%로 인상·고소득자 대상 증세 등
“이르면 2022년 증세안 도입될 수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대적인 증세를 추진한다. 새로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감당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실물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증세가 자칫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미치고 바이든에게 정치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법인세와 소득세 등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연방 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증세 추진은 빌 클린턴 정권 때인 1993년 이후 28년 만이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는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한 것을 일정 부분 되돌려놓겠다는 것이다. 또 기업의 수익을 소유주의 개인소득으로 잡아 법인세 대신 소득세를 내는 ‘패스스루 기업’ 조세 특례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소득세의 경우 연간 소득 4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와 자본이득이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에 대해서 세율 인상을 추진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 정부가 부유세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 거물’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최근 순자산 5000만 달러 이상인 가구에 대해 연간 2%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 초부유층 과세법안(Ultra-Millionaire Tax Act)을 발의했지만, 백악관은 부유세를 도입하는 대신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세금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증세 조치는 새 부양책 재원 마련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주 의회를 통과한 1조9000억 달러(약 2145조 원) 규모 부양책은 국채 발행을 통한 정부 차입이 주요 재원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인프라 투자를 중심으로 이를 뛰어넘는 새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부양책은 최소 2조 달러에서 최대 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국채 발행에만 기대지 않고 세율을 올려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복안인 것이다. 세수 확대 규모가 어느 정도 확보된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부양책을 더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조세정책센터는 향후 10년간 2조1000억 달러 규모의 세수 증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전체 증세 방안이나 일정 등은 아직 공개된 것이 없다. 시기는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의회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2022년엔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이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법인세 인상을 긍정적이라고 언급하는 등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증세를 위한 일련의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증세는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건 공약이기도 하다. 바이든의 경제고문이었던 사라 비앙키 에버코어ISI의 미국 공공정책 분석가는 “바이든 대통령은 세금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책의 모든 선택사항을 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면서 “노동과 자산 간의 불평등한 대우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실물 경제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는데 증세 방안이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다. 블룸버그는 증세로 바이든 정권의 지지기반이 흔들리는 정치적 리스크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3년 전반적인 증세를 추진했던 클린턴 행정부가 소폭의 증세로 그쳤던 이유도 정치적 리스크 때문이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기업과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법인세율 하한선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옐런 재무장관의 주도로 OECD 내에서 원칙적인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OECD에 따르면 현재 법인세율이 30%가 넘는 나라는 20개국에 미치지 못한다. OECD는 법인세율 하한선으로 12%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WP는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