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대출에 고통받는 서민
대출 과정서 피싱 인출책 누명
금융 회사 취업땐 불이익까지
‘작업대출’의 피해자는 온전히 피해자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여타 사기범죄 피해자와 다른 점이다. 우리 사회는 작업대출 피해자를 작업대출 가담자로 본다. 이 때문에 서류를 위조한 작업대출업자뿐만 아니라 이 허위 서류를 금융기관에 제출한 사람 역시 공범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이른바 ‘꾼’들은 피해자도 모르게 이들의 통장으로 또 다른 범죄 수익을 챙긴다. 피해자의 통장을 이용해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돈을 받는 게 대표적이다. 이렇게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보이스피싱의 가해자가 된다. 여기에 작업대출 피해자는 금융사 취업은 물론 금융 서비스 역시 받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다.
◇“제가 보이스피싱 조직이라고요?” = 자영업자 박대출(가명) 씨는 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박 씨는 최근 받은 작업대출이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경찰에서 전화가 오기 며칠 전 박 씨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는 말에 혹해 작업 대출을 받았다. 제2금융권에서 20% 가까운 금리로 대출을 해야 하는 박 씨에게 작업대출업자가 내건 5%의 금리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작업대출업자는 서류 조작을 통해 박 씨를 금융업 종사자로 만들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할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작업대출업자는 박 씨에게 “은행에 직장인처럼 보이게 급여 내역을 만들어야 한다”며 박 씨의 통장에 1100만 원을 입금했다. 그러곤 박 씨에게 이 돈을 현금인출기에서 뽑아 자신의 직원한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박 씨가 급여 내역을 조작하기 위해 받은 1100만 원은 급여 내역을 조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보이스피싱 일당들이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작업대출업자가 박 씨의 통장을 거쳐 출금해 간 것이다. 이 때문에 박 씨는 경찰로부터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지목받았다.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 매체(여기서는 통장)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ㆍ전달ㆍ유통하는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출 이자를 아끼고자 했던 박 씨는 작업대출 때문에 졸지에 보이스피싱 인출책이라는 오해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취업도 어렵다니요” =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대학생 이허위(가명) 씨는 금융권의 문을 두드렸지만 소득 증명이 되지 않아 번번이 좌절했다. 이 씨는 결국 작업대출업자에게 연락했다. 작업대출업자는 이 씨에게 이 씨가 ㄱ회사에 다니며 급여를 받는 것처럼 위조한 예금입출금내역서, 재직증명서 등을 건넸다. 이 씨는 작업대출업자가 만든 허위 서류로 2개의 저축은행에서 각각 1280만 원, 600만 원 등 총 1880만 원을 대출했다. 그는 작업대출업자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30%인 564만 원을 건넸다.
이 씨처럼 대출할 때 허위 또는 위ㆍ변조된 자료를 금융사에 제출하면 금융질서문란행위자로 등재된다. 금융질서문란행위자란 부정한 방법으로 대출을 받거나 거래 약정을 체결하는 등 금융 거래 질서를 문란하게 한 사람을 뜻한다. 법원에서 위조된 서류로 대출을 받은 것이 확정되면 신용정보원 전산망에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되는데 이는 전 금융권에서 공유돼 금융 회사 취업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 씨는 당장 돈을 융통하기 위해 작업대출에 손을 댔지만 그의 실질적인 경제 부담은 더 가중됐다. 작업대출업자에게 준 수수료를 빼면 이 씨의 손에 쥐어진 돈은 1316만 원인데 이 돈에 대한 이자는 1017만 원이다. 갚아야 할 원금까지 생각하면 이 씨에게 작업대출은 인생 최악의 수가 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회사 대출 전에 서민금융진흥원의 햇살론 등 공적 지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작업대출 점검 과정에서 습득한 작업대출의 특징과 적출 방법은 업계와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