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시기 면에서는 2+2 한미당국회담을 앞두고 나온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북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박뿐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와 인권 압박을 축으로 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경우 향후 북미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보낸 점도 주목해야 한다. 형식 면에서는 실질적 2인자인 김여정을 통해 발신하였다. 김여정의 강등설 등도 있었지만 예상대로 그가 대남·대미외교의 실질적 총책임자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김정은 총비서가 경제문제는 조용원 조직비서를, 대외관계는 김여정을 활용해서 일종의 역할 분담을 통해 직접 챙기려는 의도라고 판단된다. 어쨌든 로열패밀리인 김여정에게 대남·대미분야를 맡긴 것은 북한 정치에서 경제 민생문제 못지않게 앞으로 대남·대미관계가 주요 우선 순위가 될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면서 지난해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처럼 조국평화통일위원회·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기구를 정리하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든 행정부와 일면식도 없는 북한으로서 남쪽을 압박하여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 합의사항 파기 위협은 우리 정부로서도 뼈아픈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측이 미국에 기우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들이 협상에 나올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주문이다. 대남 비난이 주를 이루었지만 전체적인 톤으로 볼 때 단계적인 압박을 예고하고 있으며 당장의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의 완전한 파국은 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한미 당국 간 대북정책을 어떻게 조율하는지를 보고 자신들의 입장을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의 희망대로 2+2 한미당국회담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전히 구체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국무·국방장관이 유럽의 우방국보다 일본과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대외정책인 대중압박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협조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17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양국 모두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였지만 토니 블링컨 장관은 중국과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한·미·일 3국 공조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생각하는 우선 순위와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우선 순위의 차이를 조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로 던져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 문제를 분리하는 듯하다. 미중 대결관계에 북한 문제가 얹혀질 경우 북한 핵문제를 다룰 동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중국 역시 미국이 동맹국들을 활용해 자신들을 포위·견제할 경우 북한·러시아 등과 공동 행동 대응체제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회귀는 우려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을 한다면 한반도의 긴장은 불 보듯 뻔하다. 뒤늦게 미국은 협상에 나설 것이지만 그때는 북핵 능력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대화·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려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제재·압박을 통해 북한의 굴복을 이끌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처럼 대북 포용정책으로 갈 것인지, 오바마 행정부처럼 대북 압박정책으로 갈 것인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 동맹을 중시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참고하는 것이 택일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