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조건 까다로워지고 대기업 진정성 희석 우려
진정한 협업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줘야
정부가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펴면서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데 관해 적절성과 실효성 모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와 상충할 뿐 아니라 스타트업 육성에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등에서 실시하는 창업 지원 정책 중 대기업을 멘토로 끌어들이거나 대기업과 매칭해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비중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기부의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은 지난해 1회 개최에서 올해 상ㆍ하반기 개최로 확대됐다.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은 대기업이 제안한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창업기업을 찾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지난해 더본코리아는 ‘홍콩반점’의 짬뽕 맛을 식별하는 센서 개발을 과제로 제시했다. 지난해 총 26개의 스타트업을 배출했는데, 올해는 여기서 1.5~2배가량으로 배출 스타트업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출제 기업도 대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 등까지 포함해 규모를 확 키웠다.
과기정통부는 ‘민ㆍ관 협력기반 ICT 스타트업 육성’ 사업 예산을 지난해 16억 원에서 올해 51억 원으로 늘렸다. 이 사업은 대기업이 운영 중인 창업 프로그램을 지원받고 있거나 지원받은 경험이 있는 창업 5년 이내 ICT 중소ㆍ벤처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창업 지원을 받았으나 연구개발(R&D) 자금 조달에는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을 위해 마련됐다. 선정 기업은 과제당 연간 2억 원(1차 연도인 2021년 1억 원)의 R&D 자금을 3년간 총 5억 원 지원받는다. 자유 공모로 올해 총 19개 과제를 신규 선발한다. 대기업은 선정 기업의 멘토기업으로 사업에 참여한다.
이처럼 대기업의 지원을 기반으로 정부가 스타트업 정책을 확대하는 데 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일단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와 충돌한다는 문제가 있다.
김형산 더스윙 대표는 “결국 대기업이 하라는 대로 하는 스타트업만 지원받는 셈”이라며 “대기업을 파괴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목표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현재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이끄는 그는 KDB산업은행에서 몸담은 경험이 있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심사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정부가 정책 자금을 풀면서 스타트업의 과제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정해 준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우리나라처럼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정부가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하는 경우는 없다”며 “과제를 너무 협소하게 정하면 그 스타트업은 오직 해당 대기업의 문제 해결밖에 못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와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중간에 껴 투자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대기업의 진정성이 희석되는 게 문제다.
최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액셀러레이터인 ‘500 startups’가 201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500대 기업에서 60%가량은 ‘공간 제공’, ‘인큐베이팅’, ‘VC 투자’ 등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있다”며 “협력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상 좀 주면서 ‘스타트업 한번 줄 서봐라’ 하는 경우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정부가 중개자처럼 운영하는 경우에도 조건을 세분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형산 대표는 “언제, 어떻게 등 조건을 정한 지원은 결국 말 잘 듣는 스타트업에만 수혜로 돌아가 대기업을 파괴하는 진짜 스타트업은 소외되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진 대표도 “단순 현상금 공모 방식을 넘어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함께 혁신하고,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며 “스타트업들도 진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인지 잘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