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10년의 칼을 가는 검객과 강태공

입력 2021-03-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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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나 홀로 경제성장을 하며 미국에 맞서고 있는 중국을 보는 시각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4~11일 8일간 개최된 양회(정협 및 전인대)를 보며 전 세계의 시각은 올해 중국경제 성장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리커창 총리의 업무보고에서 언급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6.5% 이상’의 의미와 방향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진행되었다.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및 향후 5년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는 14·5규획(2021-2025)의 첫 해로 이번 양회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필자가 보는 올해 양회의 핵심은 경제성장률이 아닌 미래 중국경제의 체질 개선과 성장 방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정부 업무보고 발표를 들으며 필자의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올해 경제성장률 및 취업률 목표치가 아니라 중국의 기술자립에 대한 정책방향이었다. 리 총리는 “핵심기술 난관 돌파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10년 동안 칼을 가는 정신으로 핵심영역 기술에서 중대한 돌파를 이루어내겠다”고 언급했다. 비록 미국을 의식한 듯 미중관계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부 결속을 다지며 미국 기술패권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기술 난관 돌파 프로젝트’와 ‘10년 동안 칼을 가는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 함의를 이해할 수 있다. 핵심기술 난관 돌파 프로젝트(關鍵核心技術攻關工程)’에는 중국이 뒤처져 있는 반도체, 엔진 등 핵심기술 영역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집중 육성할 세부 리스트와 그 시기를 명확히 명시하고 있다. 과거 영국이 증기기관, 미국과 독일이 내연기관, 한·미·일 3국이 반도체를 통해 국가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중국도 핵심기술의 중대 성과를 통해 기술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이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칼을 가는 정신(十年磨一劍)’은 무엇인가? 이 말은 과거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지은 ‘검객(劍客)’이라는 오언고시의 첫 문장에서 유래되었다. 서릿발처럼 시퍼런 칼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10년 동안 보검을 갈았고, 누가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내가 해결해 주겠다는 협객의 마음을 담은 당시(唐詩)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처럼 지난 역사 속 상황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현재와 비유하고, 그에 대한 우회적 방향을 제시하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중국의 속내를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검을 만들기 위해 10년의 칼을 간다는 것은 작금의 미·중 간 기술패권에 갇혀 있는 어려움과 그에 따른 미래 방향성을 우회적으로 내포한다.

여기서 10년도 막연히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핵심성과지표(KPI)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10년의 칼은 중국 정부가 주도하여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혁신 2030 중대항목’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2030 중대항목은 2016년 13·5규획(2016~2020)을 시작하며 국가과학기술 혁신규획에서 처음 언급된 정책이다. 반도체, 항공기 엔진, 신소재, 스마트 전력,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이 주도하는 핵심기술영역에서 10년 내에 중대한 성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간 마찰이 본격화되고, 중국의 기술혁신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상황이 녹록지 않다. 10년의 칼을 가는 정신이지만 사실상 5년 안에 기술적 성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향후 5년간 진행될 14·5 규획에서 희토류 첨단소재, 고속철도 중대기술장비산업, 스마트 제조 및 로봇기술, 항공기 엔진, 위성통신, 신에너지, 첨단의료장비 및 첨단 농업기계 등 8대 분야에서부터 기술 자립을 위한 보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크게 3가지 세부적인 접근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게방괘수(揭榜掛帥)’ 전략으로 ‘방문(榜文)을 붙여 전쟁터에 나갈 장수를 뽑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기술 포상금 제도’의 확대이다. 과학연구성과 실현을 위해 과학연구경비 지원체제 및 인적자원 구축을 각 영역별로 세분화한다는 것이다. 둘째, 기초연구가 과학기술 혁신의 원천이 되도록 기초연구비용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전인대에서 발표된 2021년 중국 기초연구 투자비용을 전년 대비 10.6% 증가시키고, 국내총생산(GDP) 중 연구개발(R&D) 비율을 2025년까지 2.8%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바로 그런 맥락이다. 셋째, 제조기업들의 R&D 투자비용에 대한 추가 세제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제조기업의 R&D 비용 추가공제비율을 기존의 75%에서 100%로 인상하여 기업들의 R&D 투자를 더욱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주나라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며 오랜 세월 기다린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때(기회)인 것처럼 중국은 조용히 반격의 시점을 기다리는 것이다. 미·중 간 기술패권은 긴 호흡으로 지켜봐야 한다. 10년의 검객과 강태공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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