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열세가 짙어지고 있다. 야권 단일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5%로 박 후보(36.5%)를 압도했다. 돌파구가 필요한 박 후보 캠프는 열세 근본 원인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태 파장을 차단할 방법을 마련하는 데 애쓰고 있다.
박 후보 열세 원인으로 꼽히는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로 불거진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이슈와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최근 기자회견이다. 다만 LH 사태의 경우 현 정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직사회 전반에 해당하는 이슈라는 점에서 최대 원인이랄 수는 없다. 박 후보에 직접 독이 되는 건 박 전 시장의 과오다.
애초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발생 원인부터 박 전 시장이라 박 후보는 페널티를 받은 채 출발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데도 야권 후보와 큰 격차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불러 논란을 일으켰던 남인순·진선미 의원이 박 후보 캠프 공동선거대책본부장, 고민정 의원을 대변인으로 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고, 대형악재로 번진 건 박 전 시장 피해자가 기자회견에 나서면서부터다.
피해자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남 의원을 비롯한 자신을 피해호소인이라 불렀던 의원들을 향해 항의하고 당 차원의 조치를 요구하며 “민주당 시장이 선출되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해당 기자회견에 문제의 세 의원은 박 후보 캠프에서 이탈했다. 다만 그뿐, 민주당과 박 후보는 지금까지도 어정쩡한 반응이다.
피해자 기자회견 당일 민주당은 지도부 중 여성인 일원인 양향자·박성민 최고위원만 공개로 사과했을 뿐,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과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모른다”고 즉답을 피했다. 다음 날에야 김 대행과 이 위원장이 회의석상에서 사과했지만, 피해자가 요구한 남 의원 등의 징계 조치는 여태껏 답이 없다. 말뿐인 것이다.
양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백번이든 천 번이든 진실로 사과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공식사과를 했지만, 지도부에서 이에 대한 반응은 없었고, 징계 또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신영대 대변인도 “당 차원에서 세 의원에 어떤 조치를 한다는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 후보는 피해자 기자회견 당일 진행된 공약 발표 이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사과를 짧게 표했지만, 오후에 김진애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단일후보가 됐음을 알리는 국회 기자회견 후에는 “생각을 정리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겠다”며 기자들을 피해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박 후보는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만 수동적으로 사과 발언을 했다. 피해자를 만나겠다는 의사도 표하긴 했지만, 이 또한 ‘피해자를 선거 전에 만날 의향이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처럼 민주당과 박 후보 모두 박 전 시장 사태를 매듭짓지 못하는 가운데 한때 ‘박원순계’였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박 전 시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런 악재에 기름을 붓는 발언에도 박 후보는 “자제했으면 한다”며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걸 ‘자제’했다.
국민의힘은 이 빈틈을 파고들어 심판론을 더욱 강화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영등포구 신길동 유세에서 “박 전 시장의 자살은 서울시민들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 놨다. 박 전 시장을 심판하고 시장을 새로 뽑아 서울시가 다시 탄생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박 후보 캠프 내에서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이슈를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 사과만을 위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박 전 시장에 대해서도 ‘공이 있지만 그게 과를 덮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피해자와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자는 것이다.
즉, ‘각 잡고’ 사과해 악재를 직접 털어내자는 구상이다. 박 후보는 박 전 시장에 직접 관련이 없는 만큼 과감하게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내용의 의견문이 내부에서 공유됐다.
이 같은 돌파구는 여론조사상 20%포인트 가까이 지지율 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분명 필요하지만, 캠프와 민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추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원인을 캠프에 손을 보탠 의원들 일부가 ‘박원순계’인 데서 찾기도 한다.
양 최고위원은 “제가 공개사과를 했을 때 당과 박 후보가 함께 적극 사과에 따라나서길 바랐지만 그리하지 못해 아쉽다”며 “박 후보 캠프가 판단해야 할 텐데 적극적인 사과를 할 낌새는 없다”고 말했다. 캠프 관계자는 “캠프 의사결정 주도권을 박원순계 의원들이 잡은 터라 적극적인 사과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캠프 내 박원순계 의원은 여럿이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캠프 내 중책을 맡은 기동민 의원과 김원이 의원, 진성준 의원은 정무부시장을 역임했고 윤준병 의원은 행정1부시장을 맡은 바 있다. 이외 천준호 의원은 박 전 시장 비서실장 출신에, 김성환 의원은 노원구청장, 김영배 의원은 성북구청장, 이해식 의원은 강동구청장을 지냈다.
다만 캠프 내에선 박 후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자칫 선거에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이용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른 캠프 관계자는 “피해자를 만나면 돌파구가 될지 모르겠으나, 피해자가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경솔하게 나서버리면 선거에 이용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써는 민주당이나 박 후보의 ‘각 잡힌 사과’가 실현될 가능성은 적지만, 지금 같은 열세가 지속한다면 ‘마지막 승부수’로 고려될 수도 있다. 이번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전초전 성격인 만큼 패배에 따른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어서다.
한편 인용된 여론조사는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24일 서울 거주 18세 이상 806명 대상으로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로 진행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