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3%룰] 소리만 요란한 '3%룰’?…여전히 불안한 재계

입력 2021-04-06 19: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올해 주총, 3%룰 악용할 시간ㆍ비용 여건 부족…주가 하락ㆍ경영 악화 시 먹잇감 될 수 있어

(출처=서스틴베스트)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 ‘3%룰’의 효력이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재계는 여전히 불안하다. 외국계 투기자본이 얼마든지 3%룰 활용법을 파악한 뒤 경영권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서다.

일각에선 “재계가 3%룰의 파급력을 과장하며 엄살을 피웠다”라고 비판한다. 반면, 재계는 “투기자본이 올해 3%룰을 활용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6일 재계에 따르면 3%룰은 내년 이후 주총부터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올해 주총에서는 소액주주나 헤지펀드가 3%룰을 활용할 시간적, 비용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기자본이 경영권 공격에 나서기까지는 지분 매입부터 여론전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3%룰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은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하다 지난해 12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정기 주총이 있는 3월까지는 소액주주나 헤지펀드 등이 실력 행사를 준비할 여유가 충분치 않았다.

한국의 주가가 연일 고점을 찍는 상황도 투기자본의 공격을 피하게 된 이유다. 투기자본이 경영권 공격에 나서려면 지분이 필요한데, 코스피는 1월에 한때 3200선을 돌파하는 등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지분 매입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투기자본이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재계는 투기 자본이 내년 이후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주가가 하락장으로 전환하면 지분 매입에 나설 여력도 있고, 3%룰의 활용법을 충분히 연구할 시간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1월 25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보다 68.36포인트(2.18%) 오른 3208.99에 마치며 종가 최고 기준치를 2거래일 만에 경신했다. (사진제공=한국거래소)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주가가 내려가거나 기업 실적이 악화하면 앞으로 투기자본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내년 이후가 본격적인 시작이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재계는 3%룰이 투기 세력에 악용될 수 있다며 도입 당시에도 강한 우려를 표했다. 투기 자본이 ‘지분 쪼개기’로 여러 기관에 지분을 3%씩 분산하면 입맛에 맞는 이사를 선임해 대주주의 경영권을 뒤흔들 수 있어서다.

기업의 감사위원은 회사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대주주를 통제할 수 있다. 이 자리에 대주주를 공격할 목적의 인사가 선임되면 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전례도 있다. 2003년 SK그룹을 공격하던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은 보유하던 지분 14.99%를 4개 펀드에 3%씩 나눠줬다. 이듬해 주총에서 소버린은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표 대결을 벌였다.

SK 측은 보유지분(9.42%)보다 적은 3%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했다. 반면, 소버린은 분산했던 총 15% 가까운 지분 의결권을 모두 행사했다. 국민연금 등 SK 측 우호세력이 없었다면 소버린의 지분 쪼개기 꼼수가 성공할 수도 있었다.

2019년 현대자동차 지분 2.9%를 확보한 뒤 경영 참여를 시도한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도 또 다른 사례다. 엘리엇은 현대차 주총에서 사외이사 후보 3인을 추천했는데, 이 중 한 명은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해 생산하는 회사 발라드파워스시템의 로버스 랜달 맥귄 회장이었다. 발라드파워시스템의 최대주주는 중국 최대 엔진 업체인 '웨이차이'다.

엘리엇이 수소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를 만드는 현대차그룹과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 대표를 사외이사에 앉히려 한 것이다. 당시 주총에서 이사 선임안은 부결됐지만, 외국인 지분 중 45.8~53.1%가 엘리엇의 추천에 동조한 바 있다.

개정된 상법에 따른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와 3%룰을 당시 SK와 현대차 사례에 적용하면 투기 자본에 더 큰 힘이 실리게 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지난해 10월 6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를 만나 '공정경제 3법'과 관련한 경영계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손 회장을 비롯해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장동현 SK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제공=경총)

3%룰로 주목받은 한국앤컴퍼니와 금호석유화학은 ‘집안싸움’이었지만, 투기 자본이 전략적으로 3%룰을 활용한다면 제삼자에 의한 경영권 탈취와 정보 유출, 단기적 배당 요구까지도 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업 규제 3법' 통과를 앞두고 재계가 특히나 3%룰 도입에 우려를 표한 이유다.

재계는 한국앤컴퍼니와 금호석화의 올해 주총 결과를 놓고 3%룰의 잠재적인 파급력을 따져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투기 자본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앤컴퍼니와 금호석화 사례를 따져보며 영향을 분석해볼 것"이라며 "재계에서도 정치권을 상대로도 3%룰의 위험성을 알리고 보완 입법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