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숙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최근 한 공무원과 나눈 얘기가 이의 심각성을 더욱 깨닫게 했다.
“아무도 이 벌집을 터뜨리려고 하지 않겠죠. 대출 상환 유예만 계속하고 있잖아요. 폭탄 돌리기만 하는 거죠.”
코로나보다 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하는 게 더 두렵다는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을 해결할 정책적 대안을 설계해야 할 텐데 어디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잘 감지되지 않는다. 여기서 세금에 대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세금이란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 생활의 발전을 위해 국민이 소득 일부분을 국가에 내는 돈이다. 세금 납부 근거에 대한 공정도 중요하다면, 지금과 같은 국가적 재난 앞에선 모든 국민이 낸 세금을 독식한 자들에 의해 눈먼 돈이 되는 세금 집행의 공정성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신용 평가의 잣대는 국가 세금에 의한 재원에 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신용을 움켜쥐는 것이 가장 큰 기득권이 돼 버린 세상의 폐해를 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가. 공정한 세금 집행은커녕, 독식한 정보로 부당 이득을 일삼는 세금 도둑들의 작태를 언제까지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가. 부당하게 국가 세금을 탕진하고, 부당 이득을 취한 자들에 대한 규제의 기준은 이들에게 적용돼야 할 법이다.
보증기관 등 정부 부처의 예산은 모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 운영 예산 중 일부로 집행된 정부지원금을 딱 한 번 상환하지 못한 중소상공인은 평생을 신용 불량자로 만들어 가면서, 똑같은 세금인데 국회, 정부 행정기관, 예산 집행처, 대기업들은 그 세금을 수백·수천억씩 탕진하고도 아무런 제재가 없음은 물론이고 예산 집행자들의 신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기업들의 회생을 위해선 수천억 세금을 쏟아붓고 수없이 복권을 시켜주면서 힘없는 중소상공인들에게만 한 번의 실수에 평생 죄인의 낙인을 찍어, 다시는 그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눈먼 돈처럼 세금 탕진하는 도둑들도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공정하게 세금을 집행하는 법 같은 법은 만들 수 없는 것일까.
그런 법, 만들 수 없다면 국민은 세금을 왜 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빈곤 계층이면 앞으로 상위 계층으로 올라서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때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아예 차하위층이나 노숙자로 바로 전락하고 더 나은 계층으로 진입할 기회를 다시는 가지지 못한다. 떨어진 신용을 회복할 방법도 없고, 문제가 된 신용이 평생 그 사람의 평가를 결정짓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기본 복지도 중요하겠지만 실패한 사업가, 미취업 청년, 경력단절 여성, 갈 곳 하나 없는 중장년과 노인층 등 인생 낙오자라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연속적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도 코로나 등으로 갑자기 벼락 거지가 된 채, 실패를 겪고 있는 여러 계층의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비대면의 세상은 디지털 환경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빈곤 계층을 점점 더 사회의 불안계층으로 내몰 것이다.
특히 엘리트층 양성 위주 교육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는 자신의 실패나 고통을 공유하는 사회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못해 어디에도 그 내면의 고통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문제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OECD 가입 37개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은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내포한 뒤틀린 성장을 이어갈 것이다.
신뢰 공유 사회 기반으로 계층 이동이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한다. 학업 중단 청소년의 학업 재개, 미취업 청년층의 취업, 경력 단절 여성의 사회 복귀, 은퇴자의 인생 2막 설계 및 사회 취약 계층의 사회 재도전 지원을 법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대출 상환 유예라는 ‘폭탄 돌리기’ 좀 그만하고 자유로운 계층 이동에 대한 보장으로 사회 전 영역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긍정적으로 조성되어 서민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통합된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하는 국가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