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탈환 美ㆍ기술 굴기 中 사이서…'전략 부재' 韓 반도체

입력 2021-04-13 15:02수정 2021-04-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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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내 패권경쟁이 가열된 건 4차 산업혁명 때문이다. 대부분의 첨단 산업 분야에서 반도체의 원활한 수급이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는 이를 더욱 부각하는 하나의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반도체 지원 정책의 초점은 결국 '반도체 밸류체인 자립화’로 모인다. 설계·제조·공급 과정을 모두 자국에서 할 수 있게끔 ’현지화‘하는 게 골자다.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 500억 달러(약 56조500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투입하는 것과 중국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내용의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도체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반도체 자립화에 팔 걷어붙인 美ㆍ中…유럽ㆍ일본도 가세

미국의 경우 반도체 설계 분야에 있어선 강자지만, 제조 측면에선 동아시아권에 밀린다는 점을 들어 반도체 제조시설 확충에 초점을 뒀다. 2030년까지 반도체 제조산업에서 미국의 비중을 24%까지 늘리고, 신규 공장(팹)도 20개 가까이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미국의 현재 반도체 제조업 밸류체인 비중은 10% 안팎으로, 전반적인 수요와 시장점유율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낮다.

중국은 SMIC 등 주요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첨단공정 개발을 비롯한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산업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없애기 위한 시도다. 이를 위해 미국의 견제에 맞서 반도체 중고 장비들을 비싼 값에 '싹쓸이'하고, 적극적인 헤드헌팅을 통해 국내 유수 인재를 유인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건 미국과 중국뿐 아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제품 중 20%를 EU 내에서 생산하도록 하기 위한 방책 마련에 나섰다. 최대 66조 원의 지원금 보따리도 풀 계획이다. 일본도 직접 대만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요청하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車 반도체 공급 부족 불거질 때, 정부는 '장밋빛 전망'만 내놨다

▲이달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반도체산업협회 회장단 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성윤모 장관, 이정배(삼성전자 사장) 협회장,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회장.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주요 국가들이 이같이 긴박하게 나선 것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굼뜨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건 올해 1월부터였지만, 당시 정부는 '올해 반도체 수출 1000억 달러 돌파가 기대된다'라는 등의 장밋빛 경제전망만 내놨다.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빚어질 경제 부작용은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관련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미래 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는 두 달 후인 3월에나 만들어졌다. 이미 전 세계가 차량용 반도체 수급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이달 9일엔 산업통상자원부와 반도체협회 회장단 회동도 열렸지만 “전략 마련 중”, “민관이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라는 식의 원론적 이야기에 그쳤다.

미국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선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반도체 산업 지원 전략을 진두지휘 중이지만 한국의 경우 산업부 중심으로, 그것도 차량용 반도체 관련해서만 일부 대책이 마련된 형국이다.

“반도체 미ㆍ중 패권 다툼은 '변수' 아닌 '상수'”

업계에선 이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미ㆍ중 패권 다툼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상존하는 리스크로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을 짜야 한다는 뜻이다.

인력 양성과 세금 공제 등 기술과 관련한 지원책에 더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내 기업 입지를 조율해줄 수 있는 정부의 외교적 능력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반도체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점도 정치적인 논리에 따른 사업 타격 우려다. 전일 백악관 회의에 삼성전자가 참석하면서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의 현지 신규 투자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반도체 굴기’를 꿈꿔온 중국 정부의 투자 압박까지 더해지면 삼성이 받는 부담은 더 커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시스템 반도체는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정치적인 논리로 공장을 하나씩 더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도 나온다”라며 “미국 오스틴 공장 옆에 메모리 공장을 짓고, 중국 메모리 공장 옆에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하나 더 짓는 식”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2019년 미ㆍ중 무역분쟁 당시 홍역을 한 번 앓았던 전력이 있었음에도 선제적으로 전략을 준비하지 못한 점은 더욱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양준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탈(脫)중국화와 밸류체인 변화가 가속했지만, 국내에선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규제로 인한 자립화 과정에서 도리어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부분이 있다"라며 "산업 정책의 초점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전체 글로벌 밸류체인이 어떻게 돌아가고 변화하는지에 대한 형세를 못 담아내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주요 기업이 미ㆍ중 패권 다툼 속에서 정치적 리스크에 시달리지 않게 적재적소 지원책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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