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추억이 담긴 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 머물며 골목을 든든히 지킨 '특화 거리'가 코로나 19와 비대면 전환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행복이 담긴 장소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사라져가는 골목 속 이야기를 조명한다.
“코로나도 무섭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더 무서워요. 학생들은 집에서 인강 보느라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네요. 참 힘들어요.”
14일 노량진 컵밥 거리는 명성과 달리 문을 연 컵밥 점포가 거의 없었다. 대로변에 길게 늘어진 노점상들 사이 듬성듬성 문을 닫은 가게가 더 많았다. 이날 문을 연 점포는 20여개 중 6곳 내외. 매대 철판 위, 수북이 쌓인 베이컨과 김치 고명 뒤로 구석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상인은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오자 반색하며 일어난다. 무심한 행인만 보일 뿐, 끼니를 때우러 이곳을 찾는 고시생은 없었다.
노량진 컵밥 거리는 2000년 초반 학원가를 중심으로 노점상이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컵밥은 일회용 컵(그릇) 속에 밥을 넣고 그 위에 고기, 김치 등 여러 고명을 얹은 덮밥이다. 짧은 시간에 저렴한 가격(3500원)으로 든든하게 식사할 수 있어 수험생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미관과 위생, 보행 안전 등의 우려로 동작구는 2015년 노점 상인들과 협의해 거리를 재정비하고 특화거리로 조성했다.
학원 쉬는 시간마다 컵밥 집 앞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복작복작했던 대로변이 지금은 황량하다. 코로나 19로 학원 수강 인원이 제한되고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전환하면서 노량진을 찾는 수험생이 줄었다. 여기에 대형 임용고시 학원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오면서 상권은 초토화가 됐다.
노량진 노점상에서 컵밥을 팔고 있는 김모 씨(66)는 “학생들이 학원도 안 가고 인터넷 강의로 들으니까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 자체가 없고, 장사가 안 돼서 집에 간 상인도 많다”며 “우리 집이 그나마 사람이 제일 많았는데 지금은 하루 열댓 명은 오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때는 사람들이 저 앞 건물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밥장사 30년 중 지금이 가장 힘든 거 같다”며 “평일은 장사가 안 된다고 보면 되고, 그나마 주말에 손님이 조금 있는데 듬성듬성 오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손님과 접촉 거리가 가까운 노점 특성상 상인들이 느끼는 코로나 19 불안감은 더욱 크다. 그러나 생계와 직결된 만큼 티를 낼 순 없다.
분식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손님이 와도 코로나 19가 걱정되지만 그래도 어쩌겠냐”며 “그것보다 무서운 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 이어져서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한편 정부의 4차 재난지원금(소상공인 버팀목 플러스) 지원에 대해서는 반가움을 표했다. 앞서 중기부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약 4만 개 노점상을 대상으로 총 200억 원 규모의 소득안정지원자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컵밥 거리 상인들은 예상치 못한 지원이라며 반겼다.
박 씨는 “안 그래도 지원금 신청을 문의했는데 일단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라며 “생각지 못했는데 받게 돼 감사할 따름이지만 사실 밀린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예전에는 손님맞이로 바빠서 온종일 서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라며 “거리 두기든 코로나든 하루빨리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