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세계시장 환경은 ‘반도체 쟁탈-2차전지 부족-EV 폭주’라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시장 예측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 가트너에 따르면 2019년 4000억 달러를 약간 웃돌았던 반도체 시장은 올해 500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2040년에는 6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2차전지의 경우 리튬전지 수요가 2020년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2030년까지 1500기가와트아워(Gwh), 2040년엔 4000Gwh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또 EV 판매 대수도 올해의 200만~300만 대에서 2030년에 2000만 대로 증가한 다음 2040년에는 5500만 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경영 전문가들은 이러한 3대 산업에서의 경쟁 상황을 ‘그린 경제 전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선도국들은 탈탄소 전환과 경제성장을 한 세트로 삼아 ‘규칙 제정(룰 메이킹)’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린 경제 전쟁에서 3대 산업이 기업들의 주요 전장(戰場)이라면 각국 정부는 3대 산업의 전방위를 커버하는 지휘소(Commanding Post)에 해당한다.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은 피아(彼我)의 진영을 확실히 가르며 본격적인 전쟁을 알리는 선포식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회담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미·일 경쟁력 및 복원력(CoRe)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중국을 겨냥해 5G(5세대 통신규격) 보급에 필수적인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공동으로 연구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화를 중국과의 경제·군사 경쟁에서 매우 중시하고 있다. 첨단기술에서의 협력 분야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생명공학 등을 구체적으로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술은 전제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민주국가에 의한 규범에 따라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스가 총리는 “디지털 경제와 새로운 기술이 사회변혁과 큰 경제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인식 아래 디지털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을 두 나라가 협력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공동성명은 구체적 방안으로 5G를 포함해 6G(차세대 통신규격)의 선점을 노리고, 이 분야 연구개발에 미국이 25억 달러(약 2조7000억 원), 일본이 20억 달러(약 2조1600억 원) 등 모두 45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은 통신망에 대해 “충분한 신뢰를 갖고 있는 사업자에게 이를 맡기는 게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라고 명기함으로써 미국이 강하게 경계하는 중국 통신기기 업체 화웨이의 배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에는 화웨이에 필적하는 기지국 메이커가 없어 일본의 NEC와 후지쓰 등이 화웨이를 대신하는 존재로서 기대되고 있다고 일본 측은 해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 등의 공급망 강화책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런 배경 아래 미국은 대만의 반도체 회사인 TSMC의 최첨단 공장을 애리조나주에 유치하는 등 국내 자급률을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일본은 반도체를 만드는 장치와 소재 등에서의 강점을 살려 미국과 협력한다는 전략이다. 양국 정상은 기후변화 분야에서도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실질 제로’를 향해서 미국과 일본이 세계의 탈탄소를 견인해 나갈 것을 확인했다. 이를 위해 양국은 ‘미·일 기후 파트너십’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미·일의 2인3각으로 신호탄이 쏘아졌다. 곧 중국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그린 경제 전쟁으로 불리는 이러한 각축전의 한복판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침로(針路)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선도국들에 비해 우리의 전략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미래 3대 산업의 활로를 찾기 위해 배수진을 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