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위한 공공성 잃어 실수요층에 외면받을 것" 비판
정부가 나서서 분양가 통제 땐 사업장 반발 이탈 우려
정부의 핵심 주택 공급 대책인 '공공재개발'(공공 참여형 재개발)로 공급되는 아파트가 민간 아파트보다도 더 비싼 값에 분양될 상황이다. 서민 주거 안정 차원에서 정부가 꺼내든 공공재개발 단지의 일반분양가가 서민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에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의 공급 정책이 명분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사업 주민 설명회를 열고 예상 분양가를 공개했다. 흑석2구역은 지난해 공공재개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선정된 첫 사업지다. 재개발이 마무리되면 1324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로 거듭날 것이란 게 SH 계획이다.
공기업 참여·임대주택 기부채납 등 공공성을 갖춘 재개발 사업에 분양가 상한제 면제, 용적률 상향, 인·허가 간소화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
이날 SH가 밝힌 분양가 상한선은 3.3㎡당 4224만 원. 이대로 분양가가 확정되면 흑석2구역엔 흑석동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들어선다. 지난해 청약을 받은 흑석3구역 '흑석 리버파크 자이'는 3.3㎡당 2813만 원에 분양했다. 국민주택(전용면적 85㎡ 이하) 기준으로 따져봐도 이들 두 구역 분양가는 6억 원 가까이 차이(흑석2구역 전용 84㎡형 약 13억 원ㆍ흑석 리버파크 자이 전용 82㎡형 7억 원) 난다.
흑석2구역이 이처럼 후하게 분양가를 받을 수 있던 건 분양가 상한제 면제 덕이다. 국토교통부는 공공재개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공공재개발 사업장엔 분양가 상한제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현재 흑석동에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 중이지만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 덕분에 이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됐다.
"공공재개발, 서민 위한 공공성 놓쳐"
대신 흑석2구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고분양가 심사를 받게 됐다. 올해 초 HUG가 고분양가를 심사할 때 주변 단지 시세 반영률을 높이기로 하면서 흑석2구역은 분양가를 더 후하게 받았다. 흑석7구역 '아크로 리버하임' 시세가 3.3㎡당 5900만 원에 형성돼 있어서다. 시세가 아닌 건축비와 땅값을 기준으로 분양가를 정하는 분양가 상한제에선 상상 못 할 일이다.
문제는 분양가가 높아질수록 수요자로선 아파트를 장만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현행 대출 규제로는 13억 원짜리 집을 마련하기 위해선 주택담보대출로 최대 4억 원 남짓만 받을 수 있다. 흑석2구역에서 전용 84㎡형 집을 분양받으려면 남은 9억 원은 현금으로 마련하던지 다른 금융 수단을 융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면제해주면서 고분양가를 부추긴 면이 있다"며 "공공재개발이 공공성을 갖추려면 싼값에 분양해 주변 집값을 끌어내려야 한다. 지금은 서민을 위한 공공성은 놓치고 토지주 이익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와 공기업들로서도 고민은 있다. 분양가 상한제 면제 같은 혜택을 주지 않으면 공공재개발 사업장을 모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흑석2구역만 해도 애초 SH 등이 3.3㎡당 3200만 원을 분양가로 제시하자 주민들이 공공재개발 불참까지 시사하며 배수진을 쳤다. 분양가를 마냥 낮추면 과도한 분양 차익이 생기는 '로또 분양' 논란이 생기는 딜레마도 발생한다.
국토부도 이런 딜레마를 의식해 공공재개발 사업장에 지분공유형 주택을 도입하기로 했다. 분양 시점에선 입주 예정자에게 주택 지분 일부를 이전하고 이후 거주 기간에 따라 지분을 추가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주택 분양가 마련 부담은 줄이면서도 분양 차익이 과다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다만 아직 제대로 시장 검증을 받은 적 없다는 게 맹점이다.
흑석2구역 선례를 본 다른 공공재개발 사업장들도 셈법이 복잡해졌다. 한 공공재개발 사업장 관계자는 "아직 분양가에 관한 방침은 결정된 게 없다"면서도 "앞으로 여러 가지를 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사업장 집행부도 "곧 사업 설명회를 앞두고 있다"며 "추가 분담금 없도록 최대한 용적률ㆍ분양가 상향을 요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