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씨는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후 소송가액을 ‘1원’으로 낮춰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2015년 기각됐다.
고은 씨에게 ‘1원 소송’의 의미는 남달랐다. 돈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닌 유신헌법의 불법성을 판결문이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었다.
고은 씨는 25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1원 손해배상 소송은 진실을 찾고자 하 는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고은 씨가 당시 법원에 바랐던 것은 재판의 공정함이었지만 그는 재판 과정 내내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사들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고은 씨의 재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진행됐다. 이 때문에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사건을 맡은 판사들이 유신헌법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고수했다는 것이 고은 씨의 주장이다.
그는 “이 사건은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1년 안에 매우 빠르게 끝났는데 사법적으로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면서 “당시 임기 중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뒤집고 정부에 아부하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유신독재 시절 선포한 긴급조치에 대해 8명 재판관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3월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며 “이러한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헌재와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이제 고은 씨는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로 발길을 돌렸다. 법원에서 ‘1원 소송’으로 진실을 찾고자 했던 그는 판사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사법부에선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국회 차원의 해법을 요구할 계획이다.
고은 씨는 “법적으로 최고 판단기구인 대법원의 판단이 잘못되니 법으로 진실을 가리는 일이 어려워졌다”면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뜻을 모아 국회에 유신헌법이 불법이라고 공식 선언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