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이슈 마케팅 효과 노려…신동빈 회장 6년만에 야구장 방문…양사는 경쟁자이자 동반자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
“야구와 본업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롯데를 보면서 야구단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프로야구단 SSG랜더스 창단식을 앞두고 음성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클럽하우스에서 한 발언은 유통가를 뒤흔들었다. 신세계그룹의 SK와이번스 인수는 2018년 인천에서 롯데쇼핑에 백화점을 내주고 물러난 스토리와 맞물리며 ‘인천 상륙 작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질 정도로 숱한 화제를 낳았다.
이런 정 회장의 발언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다른 구단과 모기업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는 관행에서 벗어난다. 롯데는 일단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그룹 관계자는 “여러 분야에서 신세계와 맞서고 있지만, 롯데는 유통에만 치우치지 않고 화학과 금융 사업도 벌이는 종합 기업이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태연한 겉모습과 속내는 달랐던 듯하다. 롯데쇼핑은 4월 1000억 원 규모의 할인 행사를 홍보하며 “야구도 유통도 한 판 붙자”는 문구를 넣어 맞불을 놨고, 이어 롯데온도 롯데자이언츠의 승리 기원 이벤트를 열어 “원정가서 SSG 이기고 ON”이라며 라이벌사를 직접 겨냥했다.
신세계가 깔아놓은 판에 40년 라이벌 롯데가 뛰어들며 프로야구는 그룹 간 자존심을 건 유통 전쟁으로 커졌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의 롯데 도발이 실언이라고 보는 이들은 없다. SNS(소셜 네트워크 시스템) 팔로우 62만 명을 거느린 마케팅 귀재 정 부회장의 치밀한 계산은 이렇게 유통과 프로야구 업계를 뒤집어놨다.
급기야 롯데자이언츠 구단주인 신동빈 회장은 27일 롯데와 LG트윈스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구장을 깜짝 방문했다. 신 회장이 6년만에 야구 경기를 참관한 것이다.
전통의 유통 라이벌 신세계와 롯데는 40년 동안 백화점을 비롯해 대형마트, 슈퍼체인,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해왔고 신사업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SSG닷컴이 독립법인으로 출사표를 던지자 1년 후인 2020년 4월 롯데가 롯데온을 론칭하며 이커머스에서도 맞붙게 됐다.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의 인수전을 비롯해 주문배달 플랫폼 시장 2위인 요기요 인수전에서도 맞대결을 벌인다. 이베이는 지난해 거래액은 20조 원, 점유율은 12%로 네이버(30조 원, 17%)와 쿠팡(22조 원, 13%)에 이어 3위로 평가받아 점유율 3~5% 수준인 SSG닷컴이나 롯데온이 인수할 경우 단숨해 빅 3 이커머스로 뛰어오를 기회다.
이마트가 네이버와 약 2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해 ‘혈맹’을 맺으며 새벽배송과 당일배송 서비스는 물론 주문 후 2~3시간 내 도착하는 즉시배송 등 최적의 배송 서비스 구현을 논의하자, 롯데도 중고나라를 인수해 사업을 확대한다. 두 회사가 겨냥한 것은 사업 확대 외에 회원수 유입 효과도 있다. 네이버와 중고나라의 회원 수는 각각 5400만 명과 2330만 명에 달한다.
또한 신세계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신외리, 문호리 일원 약 316만㎡에 화성 테마파크에 도전한다. 2023년 착공해 2026년 부분 개장이 목표다. 맞수 롯데는 이미 잠실에 이어 8월에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을 열고 기다린다. 여기에는 총 31개의 체험·공연·놀이시설과 함께 2023년 반얀트리 호텔도 들어선다.
롯데와 신세계의 치열한 라이벌 마케팅은 오프라인 유통공룡이지만 예전만 못한 최근 입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소비 패턴이 온라인으로 급속히 넘어가는 가운데 두 회사의 온라인 쇼핑시장영향력은 미미하다. 각각 출범 2년(SSG닷컴)과 1년(롯데온)으로 점유율은 3%와 5%에 불과하고, 인지도 역시 쿠팡과 네이버 등에 뒤처진다.
안정적인 운영보다는 이커머스 사업 인지도를 한번에 끌어올릴만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시급한 처지다. 신세계·이마트가 야구단 명칭을 그룹명이 아닌 이커머스 사업인 SSG로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SSG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승부는 자연스럽게 SSG닷컴과 롯데온의 노출로 이어진다.
팀에 대한 충성도를 매출로 연결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 특히 롯데는 부산을 연고로 한 프로구단 롯데 자이언츠를 운영하면서 부산을 텃밭으로 삼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 업체는 부산에서만 부산본점과 광복점, 동래점, 센텀시티점 등 4개의 백화점을 운영한다. 창원점과 마산점, 울산점까지 포함하면 무려 7곳으로 지방점포 13개의 절반을 넘는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야구와 유통의 경쟁에 스토리를 입혀 화제거리를 만들어 내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마케팅”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NS 슈퍼스타로 떠오른 정용진 부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영향력이 엄청나다”면서 “롯데를 겨냥해 대결 구도를 만들면서 SSG 인지도를 순식간에 끌어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