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유니콘기업의 원활한 상장을 위한 상장 프로세스 개편을 추진한다. ‘제2, 제3의 쿠팡’을 막고, 유니콘기업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토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 심사 기준을 완화키로 했다. 미래성장업종 관련 전문가회의도 도입한다. 무엇보다 우수한 유니콘 기업이 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29일 한국거래소는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K-유니콘 상장 활성화를 위한 증권사 CEO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이날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은 모두발언에서 “최근 유니콘 기업의 해외 상장 움직임과 관련해 국내 우량기업의 상장을 두고 글로벌 거래소와 경쟁을 하는 상황은 우리 자본시장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제2, 제3의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는 도미노 현상이 생겨나지 않도록 이번 계기에 우리 자본시장이 국내 유니콘 기업에 불리한 점은 없었는지, 기업공개(IPO)제도나 절차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쿠팡에 이어서 마켓컬리, 카카오엔터, 두나무 등 국내 유니콘 기업이 잇달아 미국상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보다 미국시장에서 더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우량 유니콘 기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장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거래소는 창업자의 경영권 유지가 가능하도록 2~3대 주주 등과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유니콘기업은 상장 후 경영권 상실 등을 우려해 ‘차등의결권’이 있는 해외 상장을 선호하고 있다.
손 이사장은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제도는)차등의결권 도입 이전이라도 창업자의 경영권 관련 우려를 일부 덜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적자기업이라도 국내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미래성장성을 반영한 심사방식 도입한다.
기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기업 영업의 계속성과 재무 안정성을 기준으로 상장 심사를 해왔다. 과거 실적이 있어야 하고, 재무구조가 튼튼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번에 마련한 새로운 기준에서는 시가총액 1조 원 이상이 예상되는 기업, 시총이 5000억 원 이상이고 자기자본이 1500억 원 이상인 기업의 경우 영업의 계속성에 대한 심사를 면제토록 했다. 매출과 이익 등 실적에 관한 요건을 없앤 것이다.
해당 기업들은 자본잠식률 50% 미만 요건 적용도 면제받는다. 다만 향후 5년간 자본잠식 재발 우려가 없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대신 영업의 성장성을 평가하는 항목이 신설됐다. 이는 시총 1조 원, 시총이 5000억 원 이상이고 자기자본이 1500억 원 이상인 기업, 시총 2000억 원&매출액 1000억 원 이상인 기업에 한해서다.
미래성장업종 관련 전문가회의도 도입한다. 또 상장공시위원회 심의위원단에 미래성장 산업별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해 심사 전문성을 강화한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우량 기술기업에 대해 기술평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시총 1조 원 이상 기업의 경우 사전 기술평가 절차를 생략하고, 예비심사 청구 이후 외부 전문가회의를 통해 심사한다. 시총 5000억 원 이상 기업은 기존 복수 전문평가기관에서 A와 BBB 이상 받아야 하는 요건을 단수기관 평가에서 A 이상 받는 것으로 간소화했다.
스팩합병상장 절차도 개선한다. 신규상장 신청인이 심사 승인 이후 스팩 합병상장으로 전환하는 경우 새롭게 사전 협의와 예비심사 신청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서 별도의 예비심사신청서 제출을 생략키로 했다.
공모 이후 상장 기간을 청약 종료일 이후 3~5일 이내로 단축한다. 청약 이후 신규 상장까지 통상 6~7일의 기간이 소요되면서 투자자들의 유동성 회수가 지연되고 가격변동위험에 노출된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청약 종료일 다음 날 상장과 매매가 시작된다.
이 외에도 거래소는 대표주관계약 체결 전 유니콘 기업 대상 사전 방문 컨설팅과 기업별 전담직원 배치를 통해 상장 준비를 지원키로 했다. 대형 유니콘 기업은 심사청구 1~2개월 전에 심사 직원을 배정하고, 사전 심사를 통해 상장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유니콘기업 CEO 간담회 등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무엇보다 국내 유니콘 기업이 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다.
손 이사장은 “국내 유니콘 기업은 미국시장에서 제 몸값을 받겠다는 계산에 따라 비싼 상장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외 진출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신산업분야의 기업가치평가(valuation) 테크닉을 새롭게 개발하고, 똑똑한 글로벌 기관투자자를 유치하고, 국내 수요기반을 다져 자본시장 전체의 파이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개선안에 대해 업계에서는 현재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인 마켓컬리, 야놀자, 두나무 등 국내 유니콘기업을 붙잡을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린다. 거래소는 마켓컬리 등 상장 예상 유니콘 시업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우량기업을 놓치지 않겠다는 거래소의 의지가 강한 것 같다”면서 “이번 개선안이 유니콘 기업들에 상장의 문턱을 많이 낮춰준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