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양송화 식자재협회장 “식자재 산업, 규제 대신 지원 필요”

입력 2021-04-29 18:18수정 2021-05-0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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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휴업 도입하면 주구매자인 자영업자 위기만 커질 것…오프라인 규제 부작용 반복, 이커머스 공룡만 등장할 수도

▲양송화 식자재유통협회장은 “식자재마트에 의무휴업을 도입하면 자영업자의 위기만 커질 것”이라며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연구원에 위탁한 식자재마트 실태 조사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영세 상인들이 이용하는 식자재마트에 의무휴업을 도입하면 자영업자들의 위기만 커질 겁니다.”

양송화 한국식자재유통협회장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식자재마트가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우려를 표했다. 식자재마트는 식당이나 주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식재료를 구매하는 일종의 도매상이다. 식자재마트 매출 규모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이며 이용고객 수는 50% 수준이다. 식자재마트가 의무휴업대상이 될 경우 이용고객의 상당수 영세 식당주들이 식재료 구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산업부 식자재마트 실태조사에 희망

양 회장은 식자재마트에 의무휴업을 도입한다고 전통시장이나 동네슈퍼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데 부정적 입장이다. 그는 “한쪽이 규제를 받는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무조건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만 규제를 강화한 결과 온라인쇼핑 시장만 키웠던 과거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식당 주인들이 식자재마트를 이용해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은 가성비가 높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소량 구입할 경우 식당 주인들의 재료구입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양 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해 산업연구원에 위탁한 식자재마트 실태 조사에 희망을 걸고 있다. 실태조사를 통해 식자재마트 의무휴업이 사용자인 식당주인들의 부담이 커지고 전통시장 등으로 돌아가는 이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면 식자재마트가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협회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정부에 충분한 건의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대형마트 직거래도 ‘밭떼기’ 수준 불과

식당 메뉴판에는 식재료의 원산지가 표기된다. 국내산인지 중국산인지는 표기돼 있지만, 국내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는 국내 식자재유통산업이 선진화되지 못한 탓이다.

양 회장은 “일부 대형마트 등 대기업이 산지직거래를 하고 있지만 일명 ‘밭떼기’ 수준에 불과하다. 늘 동일한 규격대로 농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데다 식자재유통기업 상당수가 아직도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채소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 누락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원산지 추적이 불가능하며 식재료로 인한 사고에 대처하기 쉽지 않다. 국내와 달리 농산물까지 바코드를 통해 이력제가 철저히 관리되고 있는 미국에서 한때 양상추를 먹고 사망자가 다수 나온 일이 있었다. 바코드를 통해 산지를 확인한 후 농산물 자체 문제가 아닌 농업용수에 유해물질이 섞여 있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해당 산지에서 출하되는 제품을 수거해 사고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바코드를 통해 ‘팜 투 테이블’ 구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 빠른 조치를 가능케 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식자재 유통기업이 산지 직거래를 할 경우 단순히 밭에서 나는 물량 전체만 구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정한 품질 유지를 위해 관리인력이 산지에 상주하고 농약과 비료 등을 꼼꼼히 점검한다. 신선도 관리를 위해 산지에 예냉시스템을 갖춘 물류창고를 마련하기도 한다. 양 회장이 말하는 선진화된 산지 직거래 모델이 바로 이것이다.

식자재 규격 표준화도 시급하다. 식당주인이나 외식업체 구매 담당자가 원하는 양이 각기 달라 한 품목에 수백 가지 규격이 존재하다 보니 식자재 기업들의 부담이자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의 경우 상추 하나만 해도 200~300개 규격이 있다. 박스 단위로 1㎏, 500g 들이 등 기존 규격을 20가지 정도로만 줄여도 식자재 기업들이 소분하는 시간과 인건비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 양 회장은 “식당 주인들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식재료에 쓰고 있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 역시 표준화를 통해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양송화 한국식자재유통협회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협회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출점 이어 운영까지 이중규제 받는 셈

코로나19로 식당 매출이 적게는 20%, 많게는 40%가량 감소했다. 식당의 매출 감소는 식자재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규제가 필요할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양 회장은 “오프라인 매장이 줄고 온라인만 비대해지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규제만 늘리고 있다. 이러다 보면 온라인 식자재유통에 뛰어드는 대기업이 생겨나 또 다른 이커머스 공룡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쿠팡 로켓배송의 원조는 식자재유통업이다. 영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식당으로 제품을 배달하는 것이 식자재유통업체다. 식자재마트의 경우 300평 이상 규모일 때 지역 상인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출점할 수 있다. 출점 규제에 이어 운영 규제까지 이중규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양 회장은 규제로 힘든 가운데서도 농가와 상생에 나서는 회원사들의 노력에 뿌듯하다. 최근 일부 식자재 기업들이 산지 직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농민들 작물관리 전념할 수 있게 지원

양 회장은 “협회 회원사가 거래하는 산지 농부들을 만났는데 차량부터 포장박스까지 식자재 기업에서 모두 지원해 주기 때문에 작물관리에만 전념할 수 있어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아직 산지 직거래가 미미한 수준이지만 점차 확산된다면 식자재 기업은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고,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식당주인들은 좋은 농산물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 규모는 205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외식업에 공급하는 순수 식자재 유통시장은 55조 원 규모다. 그러나 산업 규모에 비해 인프라는 크게 뒤처져 있다. 대기업을 제외하고 IT 기반으로 재고관리와 물류관리를 하는 기업은 드문 상황이다. 양 회장은 이 같은 인프라 확충을 위해 협회가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가 앞당긴 온라인 중심 사업구조 재편으로 식당과 식자재 기업 간 간편주문 시스템 등 판매자와 사용자 모두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협회 차원에서 외식자재 플랫폼을 구축해 식당 주인과 식자재 기업이 보다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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