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제주도의 푸른빛 바다는 조폭들의 사시미 칼과 총기가 어지럽게 난무하더니 어느새 핏빛으로 물들여진다. 아름다운 제주의 팬션은 불법 무기를 거래하는 은밀한 장소가 되는가 하면, 횟집에선 조폭들의 시체가 나뒹군다. 여기에 어차피 죽을 남자의 처연함과 시한부 인생 여자의 애절함이 겹쳐진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촬영이 어려워져 대안으로 택한 청정 제주도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신선했다.
영화의 전반까진 뻔한 ‘깡패 영화’의 서사와 클리셰가 엿보여 일찍 실망할 수 있지만 엄청나게 뿜어내는 캐릭터의 힘이 영화의 뒤를 받쳐준다. ‘택시운전사’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엄태구, 비열한 연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호산, 빌런(악당)의 전형적인 모습에 본인만의 개성을 얹어 독보적인 매력을 보여준 차승원, 그리고 대배우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엿보이는 전여빈의 무념무상한 킬러 연기는 다른 느와르 영화와 차별화를 해낸다.
관객들은 가슴 졸이며 막다른 길에 다다른 두 남녀의 해피엔딩을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그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이며 영화가 흥행으로 가는 왕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낙원의 밤’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벤(니콜라스 케이지)과 세라(엘리자베스 슈)의 마지막 모습을 닮았다.
누군가는 제주 홍보 영화 같다고 혹평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태구와 재연이 물회와 한라산 소주를 먹고 마시던 그 술집에 가고 싶어진다면 그것대로 의미 있지 않을까?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