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최근 불거진 ‘남양유업 불가리스 파문’에 대해 사과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불가리스 사태가 일단락됐다. 그러나 남양유업의 경영 공백, 대리점주 피해 보상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업의 사회적책임과 윤리경영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한층 커지면서 재계 전반에 ESG경영 가속화도 예상된다.
홍 회장은 지난 4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가공 업체로 오랜 기간 사랑받아왔다"며 "오랜 기간 회사 성장만 바라고 달려오다 보니, 소비자 여러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 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 경영권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이 불가리스가 코로나 19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발표를 낸 지 21일 만이다.
그동안 남양유업은 대리점 갑질 논란, 홍 회장 외조카 황하나 마약 사건, 경쟁사 비방 댓글 사건 등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나, 홍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단의 조처를 하지 않으면 기업이 더 크게 휘청일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움직임이지만, 여전히 과반수의 지분을 오너 일가가 보유하는 데다 ‘제2의 불매운동’ 사태로 애꿎은 대리점주에게 불똥이 튄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건지 등에 대한 대책은 나오지 않아 홍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회의적인 시각도 팽배하다.
홍 회장은 지난 대국민 사과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차기 회장으로 지목됐던 홍진성 상무는 지난달 불가리스 사태와 회삿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보직 해임된 상태다.
이광범 대표도 홍 회장 사과에 앞서 지난 3일 임직원에게 메일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남양유업 경영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남양유업 사내이사 4명 중 이광범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홍 회장 가족이다. 홍원식 회장 본인을 비롯해 장남 홍진석 상무, 홍 회장의 어머니 지종숙씨가 사내이사다. 사실상 지 씨를 제외한 남양유업의 사내이사 전원이 사퇴하면서 홍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발표한 '혁신'의 주체 역시 불투명해졌다.
홍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굳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여전히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오너 일가가 보유한 상태라 전문경영인이 선임되더라도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남양유업은 최대주주인 홍 회장의 지분(51.68%)을 포함해 총수 일가 지분이 53.85%에 달한다.
‘불가리스 파문’은 대국민사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지만 대리점의 피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대리점 갑질의혹’, ‘외손녀 황하나 마약 사건’ 등 그동안 누적돼온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키운 불매운동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데다, 최근 ‘불가리스 사태’로 생산공장이 영업 정지 위기에 처한 것도 대리점 입장에서는 뼈아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불가리스 논란’ 이후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세종시에 남양유업 세종공장의 영업정지 2개월을 요청했다. 남양유업은 압수 수색 전날인 지난달 29일 세종시에 "청문회 절차를 밟게 해달라"며 의견서를 제출했다. 세종시는 이달 말쯤 청문회를 개최, 남양유업 의견을 듣고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세종공장에서 생산되는 발효유, 커피, 분유 등은 남양유업 전체 매출의 약 40% 차지한다고 알려졌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 전국 1100여 개 대리점뿐 아니라 우유를 납품하는 낙농가, 공장직원 등까지 줄줄이 피해를 보게 되는 구조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학교 급식 중단 등으로 원유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아예 중단될 수도 있다.
일단 남양유업은 전문경영인 영입 및 경영진 쇄신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이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나날을 만들어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번 믿어주고 성원해주길 바란다”라며 눈물을 흘린 만큼 후속 조치 이행을 통한 소비자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