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연극 넘나드는 실력파 배우…"정체되고 싶지 않아요"
배우 신성민 안엔 다양한 캐릭터가 공존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에서 비지터로서 보였던 이미지, 뮤지컬 '시데레우스'의 케플러적인 면모, 연극 '오만과 편견'에서 봤던 다아시같은 모습들은 모두 신성민이 끄집어낸 자기 자신이었다.
최근 서울 대학로 인근 카페에서 신성민을 만났다. 신성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의 비지터 역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네 명의 액터뮤지션이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기타, 퍼커션을 '플레이어'로서 선보인다는 차별점은 신성민에게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년에 하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대학로에서 '액터뮤지션'이란 장르는 흔치 않잖아요. 저도 처음 해보는 거였고요. 그런 데서 오는 에너지와 희열이 있어요. 다시 한번 제게 기회가 온다면 꼭 한 번 다시 해서 아쉬웠던 부분을 상쇄시키고 보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왔네요."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매일 밤 사람들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공포의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부부 '맨'과 '우먼'에게 12월 31일 자정 직전 불길한 손님 '비지터'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올해 비지터 역은 신성민을 비롯해 김찬호, 조환지, 이석준까지 4명의 배우가 맡게 됐다. 쿼드 캐스팅인 만큼 어떤 배우의 비지터인지에 따라 관전 포인트도 달라진다. 신성민이 구현한 비지터를 떠올렸을 때 잊히지 않는 건 '모든 곳에'라는 넘버에서 보이는 오른팔의 힘 핏줄이다.
"거기서 비지터의 정체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이 캐릭터에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고요. 대본을 처음 보고 상상한 건 '무대를 아예 뒤집어버리자'였어요. 여기까지 왔던 기운을 아예 엎어버리고 '맨'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위압을 보여주고 싶었죠."
신성민은 어릴 적 만화에서 본 캐릭터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헐크'였다. 비지터가 갑자기 커지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이다 보니 특수효과를 줄 수 없어 고민을 거듭하다 오른손의 힘핏줄을 사용하잔 판단을 했다. 그렇게 신성민의 비지터가 탄생했다.
"지인들의 의견은 반반이었어요. 너무 만화 같고 튈 수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오른손의 능력을 보이는 게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계속 오른손을 문지른다거나 적재적소에 제가 능력이 있다는 걸 조금씩 눈치챌 수 있도록 요소들을 심어놨죠. 사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핏줄이 많이 나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주사를 맞을 때도 핏줄을 바로 찾으시거든요." (웃음)
신성민은 한 인물을 연기할 때 다른 인물과의 관계성, 소통, 배경 등을 특히 고민한다. 그래서 비지터가 해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도 모습적인 것에 집중하지만은 않았다.
"비지터 뿐만 아니라 어떤 역할을 맡을 때도 그래요. 결국, 인간 신성민으로서의 결이 투영되는 거 같아요. 한 인물을 맡는다는 건 제 속에 있는 조그마한 1%를 극대화하는 작업이에요. 그게 30%일 수도 있고, 60%일 때도 있어요. 반대로 0.1%일 때도 있고요."
신성민은 요즘 생각지도 못하게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처음 대본을 받아들었을 땐 본인도 기타를 쳐야 할 줄 생각하지도 못했단다.
"제가 소질이 없어요. 작년에 처음 작품에 임할 때부터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무대 올라가면 쉽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작년 첫 공연 때는 자신 있게 무대로 올라갔는데 손이 마구 떨리는 거예요. 정말 하나를 더 눌렀다간 바로 '삑' 하겠는데 싶었어요. 딱 집중되는 순간이어서 정말 많이 긴장돼요. 예전에 '환상동화'라는 공연을 할 때도 피아노 연주를 했는데, 연습을 많이 해도 무대 올라가면 다르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더 많이 연습하고 있어요. 요샌 좀 안 틀리는데, 여유는 못 찾았고 있네요." (웃음)
극 중 '우먼'과 탱고를 추는 장면도 있다. 비지터가 '우먼'과 탱고를 추다 한껏 높게 들어올려야 한다. 신성민은 "'우먼' 배우들이 호흡으로 해주고 있어서 힘들진 않다"며 "비지터들은 버티면 된다"고 했다. 다만 춤을 춰야 하는 작품은 늘 그를 고민하게 한단다. "'춤춰요?'라고 꼭 물어봐요."(웃음)
2010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한 신성민은 올해로 데뷔 12년 차 배우다. 그는 뮤지컬과 연극, 드라마 등을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에겐 '장르 가리지 않는 배우'라는 평이 붙는다. 슬럼프는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작품을 만들어갈 때마다 재밌으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이런 스트레스를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비지터는 제가 아니잖아요. 이 인물이 왜 이 대사를 하는지 등을 이해하려면 이 말이 나온 배경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지터는 제가 아니니까요. 때론 제 뜻대로 안 돼서 배우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생각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 덕분에 긍정적으로 극복하고 있어요. 혼자서 끙끙 앓진 않아요."
신성민은 이제껏 해왔던 배역들을 한 번쯤은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예전과 달라진 지점이다. 비지터 역시 두 번째 해보니 신성민 안에 다른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 안에선 탐험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체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새로운 역할에 대한 도전이 제겐 가장 중요하지만, 다시 한번 해서 깊어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라고 할 수 있는 배우요. 한 걸음씩 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