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 과학 칼럼니스트
팬데믹의 빠른 종료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는 국가별 백신 접종 속도의 차이다.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의 특성상 한 국가에서 집단면역이 이루어지더라도 인접해 있는 다른 국가에 집단면역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재감염의 위험성이 높아 코로나19의 유행은 더 오래 지속된다. 일례로 이스라엘은 전체 인구 중 58%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고, 인구의 60%가 1차 접종을 받아 이론적으로는 집단면역에 이르렀지만, 인근 국가들의 경우 백신 접종률이 한 자릿수 초반대여서 감염이 계속 되풀이될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나라마다 접종 비율이 이토록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 인프라나 교통망 등의 상황에 따라 백신 공급 속도 그리고 이에 의한 접종 진행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이보다는 미국과 유럽 각국의 부유한 선진국의 백신 이기주의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게 중론이다. 백신 이기주의란 쉽게 말해 백신 쟁탈전에서 먼저 승리의 깃발을 꽂은 이들 국가가 ‘우리나라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다른 국가들에 백신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데, 단순히 자국 내 급한 불을 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를 감염의 재확산까지 생각해 백신을 쟁여 놓는 행위다. 한쪽에선 쓰지 않은 백신이 폐기 처분 직전까지 쌓여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단 몇 회분의 백신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코로나 백신이 전혀 없는 소위 백신 사막도 10개국을 넘는다. 백신 이기주의는 인도적 측면에서 비난받아 마땅할 뿐만 아니라, 집단면역을 통한 팬데믹의 종료라는 목표 달성을 저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집단면역이 이루어진다 해도 다른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여전히 확산되고 있는 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무작위적으로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변이종 유입 위험이 지속되면서 백신 접종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즉, 돌연변이는 진화와 적응과정에 의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고,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에 선택적인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때문에 변이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돌연변이 또는 그 조합으로 인해 세포 침투 능력의 향상이나 숙주의 면역 반응을 회피하는 기능을 갖춘 치명적 변이종이 나타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돌연변이로 인해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더 빨리 퍼질 수 있고, 자연 또는 백신으로 인한 면역을 회피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에 출몰했던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나 남아공 변이바이러스의 경우 전염성이 매우 높았던 거로 밝혀졌다. 그리고 현재 인도 전역을 휩쓸고 있는 이중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인체에 침투할 때 무기 역할을 하는 표면의 돌기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 접종 중인 백신은 면역계가 돌기단백질(spike protein)을 인식하고 차단할 수 있는 항체를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때문에 스파이크 단백질이 변형되면 백신의 작동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백신 접종 인원이 늘수록 면역 회피를 위해 바이러스 돌연변이가 촉진된다. 때문에 일부 국가가 아닌 지구촌 모든 곳에서 좀 더 신속하게 접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기심을 내려놓고 빠르게 공동 대처해야 할 때이다. 한 발 더 나가 수년 내에 다시 발생할 수도 있는 유사상황에 대한 대비도 지금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두 번의 감염병 유행, 즉 2002년의 사스(Sars) 그리고 2014년의 메르스(Mers)를 겪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사건들이었지만, 사람들은 순한 감기바이러스라 생각하고 무시하며 지나쳤다. 자연의 경고를 좀 더 신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 대비했더라면 우리의 2020년은 아주 다른 모습이었을 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