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청자 수 10배 늘며 65억 예산 두 달여 만에 동나
가꿈주택사업이 '박원순표 도시재생사업' 향방을 점칠 수 있는 시금석이 됐다. 그나마 흥행에 성공했던 정책마저 예산 고갈로 멈춰섰다. 실무 부서에선 예산 추가 편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 부서에선 미적거린다. 도시재생 예산 축소를 시사한 오세훈 서울시장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가꿈주택사업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을 두고 부서 간 논의를 진행 중이다. 가꿈주택사업은 주택 성능 개선지원구역 내에 있는 노후주택(준공 후 20년 이상 경과) 수리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말한다.
가꿈주택사업은 박원순 전(前) 시장이 재임하던 2016년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시작됐다. 재개발 등 전면 철거 방식 대신 점진적 리모델링 방식으로 주거 환경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지붕과 외벽, 방수설비, 단열설비 개선 등에 한 가구당 최대 1700만 원까지 지원해줬다.
가꿈주택사업은 도시재생사업 가운데서 주민 호응이 큰 사업으로 꼽힌다. 벽화 등 환경미화사업보다 주거 환경 개선 면에서 체감도가 크기 때문이다. 가꿈주택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주거환경개선과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장 실적이 두드러진 사업"이라며 "앞으로도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시는 가꿈주택사업에 예산 65억5000만 원을 편성, 2월부터 지원 신청을 받았는데 두 달만인 지난달 말 예산이 동났다. 예산 편성 때까지만 해도 서울시는 7월 말까지 예산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지난해보다 사업 신청자 수가 열 배가량 늘면서 예산이 부족해졌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예산이 떨어지면서 지원 신청 접수도 중단됐다.
가꿈주택사업 지원을 받아 집 수리를 기대했던 정책 수요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집 수리를 준비하기 위해 견적 등 준비를 했는데 서울시에서 공지했던 것보다 일찍 사업이 종료되면서 헛수고가 됐기 떄문이다.
반발 민원이 이어지자 주거환경개선과에선 이달 편성하는 서울시 추경예산에 가꿈주택 예산을 증액 편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주거환경개선과에서 요청한 금액은 90억 원으로 알려졌다. 예산이 완전 소진되기 전부터 증액 논의가 이어졌으나 아직 증액 여부는 확실치 않다.
서울시 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가꿈주택사업은) 사업 자체에 대한 검토한 필요한 사안"이라며 "장기적으로 지속할 필요가 있는 사업인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르면 다음 주 추경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서울시에서 가꿈주택사업이 도시재생사업 출구전략 신호탄이 되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지난달 새로 취임한 오세훈 시장이 도시재생사업에 관한 부정적 견해를 꾸준히 드러냈기 떄문이다.
오 시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도시재생은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사업은) 재원이 있기 때문에 하는 사업이 있다. 수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돈이 내려가서 하는 사업이 있는데 이건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수천억 원을 들여 페인트칠한 게 전부”라며 도시재생 정책을 비판했다.
이런 오 시장 의중은 서울시 행정에서도 실현돼 가고 있다. 서울시는 이달 공개한 조직 개편안(案)에서 도시재생실을 없애고 그 기능을 주택정책실과 균형발전본부로 분산하기로 했다. 정책 축도 기존 주택 기능 개선보다는 신규 공급에 초점을 둔다.
예산담당관실 측은 가꿈주택 예산 증액에도 이런 기조가 반영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도시재생사업 방향에 관한 판단은 실무부서에서 할 사항"이라고 했다.
한국도시재생학회장을 지낸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정책 여건이 바뀌면 도시재생정책 방향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넓게 보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도 도시재생에 포함된다"며 "정비사업이 추진 가능한 지역에선 정비사업을 추진하되 공적 성격을 부여하고 사업성이 안 나오는 지역에선 지금까지 추진했던 협의의 도시재생 정책을 추진해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