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사원 결정…외교부ㆍ과기정통부 공유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인 국사원(Conseil d‘Etat)이 화웨이 장비 철회 관련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프랑스 통신사 ‘브이그 텔레콤’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외교부는 이 같은 동향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공유했다.
23일 주 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에 따르면 지난달 8일 국사원은 통신사가 5G 화웨이 장비를 철회할 때 정부에 손해배상 요청을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프랑스의 반(反)화웨이법이 통신사들의 사유재산권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이에 따른 심각하고 특별한 손해에 대해서는 정부에 보상 요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2019년 법을 개정해 통신사가 5G 장비를 도입할 때 사이버보안국(ANSSI)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지난해 8월 프랑스 정부는 5G 구축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제한하진 않았지만 사이버보안국은 최대 8년 사용 허가 제한을 뒀다. 당시 사이버 보안국은 화웨이 4G 장비를 사용한 경우 해당 장비 사용에 대해 3~5년 허가를 부여했고, 유럽의 통신장비 업체 노키아와 에릭슨 장비를 사용한 통신사에 일괄적으로 8년짜리 면허를 발부했다. 즉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 통신사에 ‘면허 기간’으로 패널티를 준 셈이다. 사실상 2028년까지 프랑스 내 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가 단계적으로 퇴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프랑스 통신사 브이그 텔레콤과 SFR은 지난해 6월부터 4G에 화웨이 장비를 썼다. 각각 47.5%, 52% 비율로 화웨이 장비를 썼고, 사이버보안국의 사용 허가 제한에 대해 정부에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그해 9월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 보상을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2월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 통신 장비의 정보 누설, 해킹 등을 위한 5G 장비 도입 관련 제한 규정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브이그 텔레콤은 사이버보안국의 결정 때문에 2028년까지 인구 밀집 지역인 스트라스부르, 브레스트, 툴루즈, 렌 지역에 설치하기로 한 5G 장비 3000개를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국사원은 헌법위원회의 판결을 부정하진 않으면서도 손해배상 부분에서는 통신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판결은 화웨이 장비를 쓰는 통신 업체들로서는 반길만한 소식이다.
국내 이동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LG유플러스는 아직 28㎓(기가헤르츠) 대역에서 화웨이 장비를 쓸지 결정하지 않았다. 3월 말 기준 28㎓ 대역 5G 기지국은 SK텔레콤 60대, KT 24대, LG유플러스 7대로 100대 미만이다. LG유플러스 경우 현재는 28㎓ 대역 장비 전부를 삼성전자에서 공급받아 구축했다. SKT는 삼성전자와 에릭슨 장비를 썼고, KT는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장비의 비율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화웨이 제재 기조가 유지되면서 LG유플러스가 28㎓ 대역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고수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신사들은 연말까지 28㎓ 대역에서 각사별로 1만5000대 씩 기지국을 의무 구축해야 한다. 앞서 올해 2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이혁주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화웨이 리스크에 관해 “주가엔 영향을 미치더라도 서비스에는 지장이 없다”며 “향후 28㎓와 다음 세대(6G)와 관련한 문제가 있겠지만 이 두 개 문제 역시 아직 꽤 먼 어젠다”라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가 28㎓ 대역에서 화웨이 장비 도입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28㎓ 기지국을 구축할 때 3.5㎓ 대역처럼 비단독모드(NSA) 방식을 쓰게 되면 장비를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비단독모드는 5G가 LTE와 연동된 방식을 뜻한다. LG유플러스는 3.5㎓ 대역의 5G 망을 구축할 때도 LTE 망과의 호환성을 이유로 화웨이 장비를 썼다.
과기정통부는 외교부와 마찬가지로 화웨이 장비 사용 여부에 관해 “민간 업체가 판단할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백도어 부분은 계속 점검하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백도어란 공개되지 않은 접속 경로로 시스템에 무단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지난해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제2조 제7호)에서 백도어를 이용한 사이버침해 사고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침해 사고 개념이 확대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보안 부분은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