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맞은 자본시장 호기 놓치면 안돼, 자본시장 공정성에 가장 신경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특유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온화한 표정으로 거래소 조직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12월 21일 취임한 손 이사장은 취임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소회를 묻자 “5개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자본시장의) 특별한 시점에 온 것 같다”면서 “우리 증시가 저평가 국면, 소위 박스피라고 불리던 자본시장에 새로운 장이 열렸고, 조직의 장(長)으로서 굉장히 큰 변화를 압축적으로 짧은 기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증시 호재 기쁘지만 숙제도 많아
실제로 손 이사장 취임 이후 국내 증시에는 경사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초로 3000선을 넘어섰고, 코스닥지수도 21년 만에 1000선을 재돌파했다. 이외에 코스닥 상장사도 1500개 사를 넘기기도 했다.
손 이 사장은 “호재가 있어서 기쁘지만 동시에 전임자보다 많은 숙제가 안겨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취임 초부터 끊임없이 자본시장에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자본시장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자본시장 안정이 최우선이지만 그중에서도 불공정한 구멍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며 “소위 ‘동학 개미’라고 부르는 개인투자자들이 모처럼 자본 시장에 신뢰를 주시는데 실망을 주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개인 투자자분들이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진 공매도 부분에서, 그분들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다시 등을 돌릴 것 같아 부분재개 할 때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 “꼼꼼히 준비한 만큼 성과도 있었고, 재개 한 달 차까지 시장에 혼란을 주는 큰 문제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공매도가 재개된 지 3주까지 통계를 보면 총거래대금에서 공매도가 차지하는 대금이 재개 전 4% 수준에서 2.8% 수준으로 줄었다. 공매도 현황은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만 불법 공매도의 경우 한 달 단위로 보는 만큼 세부 결과는 다음 주 정도 돼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손 이사장은 “공매도에 대한 평가는 이 제도에 불만을 가졌던 투자자 입장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특별 감리단을 만들어서 인력 투입도 많이 하고 전문가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어찌됐든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마음을 풀어주도록 노력할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올 초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하면서 국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기업)들도 해외 증시로 줄줄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거래소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유망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실제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 손 이사장의 생각이다.
손 이사장은 “쿠팡이 미국 상장할 때는 다들 일종의 해외 진출 러시가 일어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유행처럼 자기 사정과 맞지도 않는데 해외 증시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때문에 지금까지 앉아서 오면 상장을 받던 것을 거래소 직원들이 나가서 유치하도록 했고 실제로 간부들이 기업을 직접 찾아 설명도 하면서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야놀자 등 상당수의 기업을 국내 증시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 같다”며 “단정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이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국내 상장으로 결정해 줬고 스탠스를 바꾸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지배 지분이 적어서 차등의결권 때문에 해외 증시로 나갈 것을 고민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상황인데 국회에서 차등의결권 관련 논의가 시작된 만큼 추후 이에 대한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손 이사장은 예상했다.
ESG 투자 정보포털 기능 할 수 있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에 대책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는 “거래소가 할 일은 ESG가 투자하는데 판단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ESG는 추상적인 내용인 만큼 구체적인 판단까지 할 수 있는 종합정보포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 간 정보격차를 막기 위한 스몰캡 독립 리서치 조직도 속도를 내고 있다. 손 이사장은 “증권사들이 내놓는 기업 보고서 대부분이 라지캡(대형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 간 정보격차는 꾸준히 지적된 문제”라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증권사에 비교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양질의 리포트를 양산하기 위한 조직 구성을 준비 중이고 올해 하반기 중에는 가시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장과 소통하는 동반자 될 것
손 이사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거래소 조직 변화에 대한 계획도 제시했다. 취임 당시 책임감 있는 파수꾼, 시장과 소통하는 동반자 그리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자가 될 것을 강조한 손 이사장은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아 ‘5대 핵심전략 및 20개 추진과제’를 발표했고, 거래소 직원들과 ‘CEO와 함께 하는 소통 콘서트’를 통해 거리낌 없는 소통에 나선 바 있다.
손 이사장은 “거래소 직원 개개인의 경쟁력도 높고 능력은 있는데 조직 문화가 관료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현재 재택 시스템만 하더라도 재택근무자는 업무에서 제외하는 시스템인데 스마트 워크 환경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유연하고 역동적이며 젊고 트렌디한 직장으로 바꿔나가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이어 “현재 우리 거래소는 수입의 70%가 매매 수수료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거래소가 그동안 쌓아온 플랫폼과 데이터가 많은 만큼 정부사업, 인덱스 사업 등을 통해 지나치게 매매 수수료에 의존하는 현 구조에서 탈피해 글로벌 추세에 맞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손병두 이사장은
△1964년생 △서울 인창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33회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 △기획재정부 국제기구과장, 외화자금과장, G20기획조정단장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사무처장, 부위원장 △제7대 한국거래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