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이모 씨(41)는 요즘 국제유가가 급등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남몰래 웃는다. 주유비를 걱정하는 직장 동료들과 달리 오른 기름값 덕에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씨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원유 상장지수펀드(ETF)를 직접 샀다.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해외 주식 직구족(族)이다.
국제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떨어질 때마다 사들인 ETF만 4000만 원어치. 그는 “100달러에서 반 토막 난 유가가 언젠가는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투자금 절반은 최근 유가가 60달러일 때 팔아 벌써 20%가 넘는 수익과 평가차익을 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렇게 환매한 돈을 국내외 원자재 ETF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연 1%대 초저금리 시대에 돈 벌기 힘든 세상이 되면서 다양한 자산으로 눈 돌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저성장·저금리·저수익의 ‘3저(低) 시대’로 접어든 국내외 자산시장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지면서다. 특히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원유 등 원자재 ETF가 주목받고 있다.
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STAR 미국S&P원유생산기업 상장지수펀드(ETF)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66.67%에 달한다. TIGER 원유선물Enhanced(H)와 KODEX WTI원유선물(H)은 각각 42.89%, 42.36%를 기록했다.
유가의 두 배로 움직이는 레버리지 상품인 경우 강세가 더 뚜렷했다. 같은 기간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101.18% 뛰었다. 이 밖에도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94.21%),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91.78%) 등도 100%에 육박했다.
국제 유가가 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면서 양호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6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에 배럴당 67.76달러까지 오르면서 2018년 10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도 장중 배럴당 72달러를 넘어서면서 2019년 5월 이후 최고가를 달성했다.
지난해 국제 유가는 코로나 사태 여파로 18년 만에 배럴당 20달러를 밑돌 만큼 급락한 바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ETN 주가는 90%가량 급락하면서 ‘깡통’이 된 주식 계좌도 쏟아졌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 기대감에 힘입어 유가가 반등하더니 최근 들어 원유 투자 수익률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원유 관련 상품들도 덩달아 강세다. 석유 시추 관련 장비업종이 대표적이다. 이들 업종을 추적하는 글로벌 ETF에는 XES, OIH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연초 이후 각각 53.4%, 58.9%나 된다.
원유시장 전망은 장밋빛이다.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 IHS 마킷 부회장은 1분기에서 3분기 사이에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며 하루 700만 배럴을 전망하며, 올해 브렌트유 목표 평균가를 배럴당 70달러로 제시했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S&P500 편입 기업들의 2분기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도 전 분기 대비 5.8% 뛴 것으로 집계된다. 이 중에서도 에너지 섹터(26.3%)가 가장 높았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및 유럽의 경제 재개에 따라 올해 여름 글로벌 원유 수요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유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되면서 에너지 기업들의 이익 개선 전망도 주요 섹터 중 가장 높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