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3분기부터 임상 3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성공 가능성이 큰 백신을 선구매하겠다"고 공언했다. 백신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 일정 물량을 사들여 임상 실패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겠단 뜻이다.
그동안 업계는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임상 3상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비교임상 도입과 성공 여부에 상관없는 정부의 구매 약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정부가 최근 국산 백신 자급화에 속도를 내기 위한 '면역원성 비교임상 3상' 시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데 이어 선구매까지 약속하면서 국내 백신 개발사들이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미국 워싱턴대학 항원디자인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합성항원 코로나19 백신 'GBP510'의 3상 IND를 이달 중 식약처와 해외 규제당국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의 조기 개발을 위한 신속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이르면 7월 3상 진입도 가능하다.
GBP510은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으로부터 2369억 원(2억1010만 달러)의 지원금을 확보했다. 이 후보물질은 CEPI의 '차세대 코로나19 백신' 프로젝트의 첫 번째 대상이기도 하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 범정부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임상시험 지원 TF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개발·허가를 논의하고 있다"며 "정부의 백신 선구매 지원도 백신 개발에 큰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임상 3상은 백신 후보물질과 위약을 각각 투여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비교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방법으로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 도입된 다국적제약사의 백신들은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한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대규모 임상 3상을 실시했다. 만일 국내에서 이렇게 임상 3상을 진행한다면 비용 부담은 물론 막대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개발 중인 백신을 이미 허가된 백신과 동일한 면역원성 지표 등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임상 3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피험자와 위약대조군을 수만 명에서 수천 명 규모로 줄일 수 있다. 식약처는 백신의 부작용 등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피험자 인원을 최소 3000명 이상으로 설계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에 진입한 기업은 SK바이오사이언스와 셀리드, 유바이오로직스,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5곳이다. 모두 임상 1상 접종을 완료한 상태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셀리드, 제넥신은 현재 임상 2상에 진입했다.
셀리드는 8월 중 임상 2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2상을 마치는 대로 허가당국과 협의해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셀리드가 개발 중인 백신은 국내에서 접종되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과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이며, 얀센 백신처럼 1회 접종으로 효력을 낸다. 비교 가능한 제품군이 2종이란 점에서 다른 후보물질들보다 수월한 비교임상이 가능할 전망이다. 합성항원 방식인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 백신은 노바백스 백신과 비교해야 하지만, 아직 국내는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주요국 규제당국의 승인이 이뤄지지 않았다.
유바이오로직스는 9월 초 '유코백-19'의 2상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노바백스 백신이 승인되면 임상 3상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진원생명과학은 연말까지 임상 3상 진입이 목표다.
코로나19 DNA백신 'GX-19N'을 개발 중인 제넥신은 임상 1상에서 안전성과 효과성을 확인했다는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2a상의 중간결과도 7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제넥신은 임상 3상을 다국가에서 추진하기로 결정, 인도네시아 1000명을 시작으로 총 3만 명을 모집한다. 식약처는 개발 방식이 다른 백신에 대한 비교임상의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만큼 회사는 기존 방식으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