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간부채가 선진국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 가계와 기업의 빚 모두 국내총생산(GDP)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계부채의 상환능력은 급격히 악화했다. 금리 변동에 대한 방어력이 취약해져 금리 상승 국면에서 경제 충격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제결제은행(BIS)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로 2016∼2020년의 5년간 민간부채 추이를 분석한 결과다. 우리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87.3%에서 103.8%로 늘어 16.5%포인트(p) 증가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 G5의 증가폭은 6.4%p였다. BIS 기준 작년말 우리 가계부채는 1998조3000억 원이었다. 기업부채도 2016년 GDP의 94.4%에서 작년말 111.1%로 높아졌다.
소득보다 빚 증가 속도가 빠른 반면, 부채 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진 점에서 심각하다. 우리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DTI)이 2015∼2019년 사이 28.3%p나 증가한 반면, G5는 1.4%p에 그쳤다.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 역시 우리는 1.6%p 높아졌는데 G5는 0.2%p 줄었다.
BIS가 4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민간부채의 위험도에서 한국이 7위로 급격히 상승했다. 작년말 기준 ‘신용갭’인데, 우리나라가 18.4%p로 197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9년말에는 6.7%p에 그쳤다. 신용갭은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장기 추세를 벗어난 정도로, 부채 리스크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경기 부진에 따른 저금리로 기업과 가계의 신용이 늘었고, 특히 작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리인하와 확장재정이 가속화하면서 부채가 급증했다. 금융 불균형이 심화한 상태에서 금리인상 등 통화정책 변화에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빚에 짓눌린 구조에서 통화정책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은 이미 돈줄을 죄는 긴축(테이퍼링)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신호도 잇따른다. 한국은행도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를 위한 선제적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가계부채가 부동산에 편중돼 유동성 위기와 금리 인상에 취약한 문제가 가장 크다. 코로나 이후 저소득층의 빚이 많이 늘어나 이들부터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일단 긴축과 금리인상의 시동이 걸리면 추세화하면서 경제 전반에 장기적인 파장을 몰고 올 공산이 크다.
한은이 금리인상을 최대한 늦춘다고 해도 한계가 뚜렷하다.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형편없이 약화된 경제 체질이 최대의 위기 요인이다. 기업 활력과 경쟁력을 높여 질 좋은 일자리를 확충하고,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여력을 키우는 것이 부채상환 능력을 높이는 당연하고도 최우선적인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