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들 정치경제부 기자
선과 악의 구분이란 중세적 특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K능력주의’는 선과 악의 흑백논리로만 대중을 미혹하려 든다. 우선, 한국에서 드러나는 능력주의의 실상은 미국의 능력주의와 다르다. 학벌, 부모의 재산과 인맥 등을 간과한다. 개인의 능력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만 쌓아올린 금자탑이라고 여기며, 이를 공고화하려 한다. 능력에 영향을 주는 제3형의 요인들(성 정체성, 가정환경, 유전자 등)을 무시한 채 줄 세우기로 밀어붙이려는 태도는 사회적으로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신화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역시 저서 ‘똑똑함의 숭배’에서 능력주의란 인간의 능력이나 진취성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로 새로운 계급, 즉 ‘재능의 귀족’을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 자체를 부정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단일 잣대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 위치가 능력에 의해 결정됐다는 점을 과하게 신봉하는 건 불평등 상황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K능력주의 신화의 저변은 혐오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바늘구멍을 넓혀 달라는 젊은 세대가 모든 할당제를 폐지한다는 이준석을 청년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 띄우며 능력주의를 신봉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논의는 더욱 진전되어야 한다. 복지 확대를 통해 능력주의 결함을 대안 삼는 편의 경우, 정도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숙성되지 않았다. 반면 능력주의가 온전하게 발휘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 또한 섞여 있다. 이 신임 당대표는 2019년 저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이 승자가 된 입시를 두고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모토로 내세운 능력주의가 ‘시험 만능주의’에 그치지 않도록 논의에 더욱 앞장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