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불균형 상황 점검보단 경기회복세 및 물가오름세 지속 여부 평가가 중요하단 의견도
가계부채 급증과 주택시장 가격 상승에 대한 대응을 놓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격론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금통위의 반란’으로 불린 2004년 11월과, 4대 3 결정으로 사상 유례없이 당시 총재까지 나서 의사록에 의견을 개진해야 했던 2013년 4월과 비견될만하다.
15일 한은이 공개한 지난달 26일 동향보고회의와 27일 본회의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융불균형 상황이 통화정책방향 관련 토론주제로 오른 가운데 A금통위원은 “최근의 가계부채 및 주택시장 상황은 완화적 금융여건 하에서 거시건전성정책만으로는 금융불균형 누증에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이런 맥락에서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거시경제 여건과 함께 금융불균형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각종 대응책만으론 가계부채와 부동산값 급등 문제를 잡을 수 없는 만큼, 기준금리를 인상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반면, B위원은 이와 관련해 “LTV(주택담보비율) 규제 강화 등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주택가격 상승폭은 더 컸을 것”이라며 “거시건전성정책 효과가 제약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응수했다.
B위원 의견에 대해 C위원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대응과정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규제 등이 일부 완화된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전반적인 거시건전성정책이 강화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받아쳤다. D위원도 “거시건전성정책 효과는 금리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거시건전성정책이 주택가격과 가계부채에 미친 영향 분석 시 이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이후 B위원으로 추정되는 위원은 “최근의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아직은 금융불균형 상황보다는 경기 회복세 및 물가 오름세의 지속 여부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실상 금융불균형 문제를 주제로 올린 것부터 불만이라는 점을 감추지 않은 셈이다.
통상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위원 발언에 대해 다른 위원이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특히, 한 위원이 의견을 내고 이를 다른 위원이 반박하고, 이를 또 다른 위원들이 재반박하는 경우는 유례를 쉽게 찾기 어렵다.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같은 사례는 박승 전 총재 재임 당시였던 2004년 11월 금통위나 김중수 전 총재 재임 당시인 2013년 4월 금통위 등에서나 찾아볼 수 대목으로 보인다.
2004년 11월 당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한 3.25%로 결정한 가운데 부총재였던 이성태 위원이 동결 소수의견을 냈다. 한은 집행부이며 총재의 복심인 부총재가 소수의견을 냈다는 점을 들어 세간에서는 ‘금통위의 반란’이라 규정했었다. 이는 한은 금통위 전날 현재와 같은 동향보고회의를 공식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2014년 10월16일 박승 전 총재는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금통위원들에게 이번엔 동결하고 인하하더라도 다음달 하자고 했었고 다 동의한 줄 알았다. 금통위 당일 막상 뚜겅을 열어보니 인하 의견이 많았다. 대세가 기울자 일부 위원들도 인하에 동참했다. 사실상 4대 3 동결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또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금통위원들과의 소통강화를 위해 곧바로 지금의 동향보고회의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2013년 4월 당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했다. 다만, 이후 의사록 공개전부터 4대 3 동결임이 알려지며 시장에 혼돈을 줬다. 실제 당시 의사록 말미엔 김중수 총재 추정 위원의 의견이 담기기도 했다. 이는 이후 금통위부터 금리결정 당일 소수의견이 몇 명인지를 공개하는 계기가 됐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토의과정으로 이해해달라. 금통위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고, (토의과정에서) 의견 차이를 줄여 나가기도 한다”며 “조동철 위원 재임당시나 그 전 금통위원들이 재임할 당시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의사록을 통해 공개됐었다. 의견차를 좁히기도 하고 다르면 다른데로 의사록에 나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같은 주제를 놓고 언급하다보니 (의사록 형식이) 그렇게 나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