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 자금 유출·경기 부양 사이에서 선택 기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6일 국제금융협회(IIF)를 인용, 아시아 신흥국의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이 지난달 5억 달러 순유출됐다고 전했다. 순유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자금 유입이 계속되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면 유출액은 무려 108억 달러(약 12조679억 원)로 확대된다.
국가·지역별로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유출되는 돈이 유입되는 자금을 초과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종합지수(KLCI)와 필리핀 증시 종합지수(PESi)는 지난해 말 수준을 밑돌았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태국 바트화 등 주요 통화의 달러 대비 가치도 작년 말보다 낮은 수준이다.
해외 투자가들이 아시아 시장을 꺼리는 것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감염자가 여전히 고공 행진을 하고 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달 중순 해제 예정이었던 봉쇄 조처가 연말까지 연장되면서, 대부분 기업에서 조업 정지가 계속되게 됐다. 태국 역시 음식점 영업 및 외국인 관광객 수용 제한이 계속되면서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이 2.5~3.5%에서 1.5~25%로 하향 조정됐다.
인플레이션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중장기적 금리 상승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것도 자금 유출 추세에 박차를 가하는 요인이 됐다. 만약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의 점진적 축소) 검토를 표명할 경우 금리가 낮은 아시아 신흥국에서의 자금 유출은 한층 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현재 경기 부양을 우선하면 금융완화를 단행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자금 유출 우려를 해소하는 역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나단 포턴 IIF 연구원은 “신흥국 중앙은행의 향후 최대 중요 과제는 연준 테이퍼링에 따른 시장 혼란에 흔들리지 않고, 선진국 금리 인상 물결에 뒤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