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잭' 합류…"브로맨스와 로맨스 구분 없다"
"로맨스가 잘 안 어울리나요?"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김준영을 만났다. 김준영은 2018년 데뷔했다. 2016년 드라마 '화랑'에도 얼굴을 비친 바 있지만, 정식으로 무대를 통해 관객을 만난 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통해서였다.
"제목엔 사랑이 있는데, '사랑은 비를 타고'도 브로맨스를 그리고 있어요. 형제들의 우애를 담고 있죠. 제목만 보고 보러 온 커플들도 있어요. 제 대학 동기도 그랬대요. 그런데 1시간 40분짜리 공연인데 1시간 20분이 돼도 남녀가 사랑을 안 하니 제시간에 끝날 수 있나 싶었대요. 하하."
김준영은 '브로맨스'와 '로맨스'를 구분 지어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가능한 똑같은 마음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만 정서적으로나 분위기로나 어두운 작품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리틀잭'으로 힐링하고 있는 요즘이다.
'리틀잭'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감성 역시 '소나기'와 같다. 다만 배경이 영국이다. 1967년 영국의 한 밴드인 '리틀잭'의 보컬 '잭 피셔'가 그의 전부가 되어버린 첫사랑 '줄리 해리슨'에 대한 기억을 노래한다. 2016년 초연 이후 2017년 홍익대 아트센터, 2019년 대학로 TOM 등에서 재공연을 했다. 올해 5주년을 맞은, 대학로 스테디셀러 극이다.
잭 피셔는 기타를 잘 치는 캐릭터다. 기타와 가깝지 않은 김준영은 100분 동안 무대 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음악 감독한테 레슨과 검사를 매주 받는 식으로 4~5주간 5곡의 기타 연주를 연마했다. 반복이 정답이란 생각에 앉으면 무조건 기타부터 집어 들었다.
"2년 전에 정말 재밌게 봤어요. 제가 해왔던 작품과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 될 거 같았습니다. 기타 연주도 서툴러서 혼자 삐걱댔고, 따라가기 위해 애썼지만, 무대에 올리고 나니 그만큼 보람이 커요."
- 기타와는 친해졌나.
"제가 원래 기타를 별로 안 좋아했던 친구예요. 하하. 능숙한 사람도 무대에 올라가면 긴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악기를 노래 부르면서 해야 하니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연습을 완벽히 했다고 해도 무대에 올라가면 틀릴 거 같은 불안감도 있었죠. '사랑은 비를 타고'에선 피아노를 치는 역할을 맡았어요. 6개월 동안 피아노로 공연을 시작했죠. 다만 하나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하나 더 생겼다는 건 배우로서 보람된 일이에요."
- 이번에 '리틀잭'을 합류했기 때문에 다른 배우와 차별점이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을 거 같다.
"최대한 저로서 해보려 했어요. 김준영을 많이 녹이고 싶었어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만들려고 해도 결국 첫인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리틀잭'을 접했을 때 첫인상을 담아내려 해요. 잭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너무 꾸며진 모습이 아니길 바랐어요."
- 첫인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19살의 풋풋함을 가장 먼저 느꼈어요. 저도 첫사랑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그때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떠올리려 했죠. 관객이 그 풋풋함을 느껴야 끝까지 잘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시대에 밴드를 할 정도면 숙맥은 아닐 거 같아서 너무 바보스러워 보여서도 안 되고요. 연애 세포가 많이 죽어있어서 오랜만에 옛날 기억을 꺼내서 하고 있어요."
- 잭 피셔랑 김준영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설명해 달라.
"생각해보면 잭은 용기가 있어요. 줄리 집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줄리 아버지한테 맞고도 줄리의 저택으로 달려가잖아요. 저는 줄리 아버지가 가라고 했다면 '다신 안 만나겠습니다' 하고 갈 거 같아요. 하하. 잭은 사랑에 용기 있고, 순수한 친구예요. 저도 아직 순수한 거 같아요. 우유부단한 면도 있고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래'라고 대답할지 '알겠어'라고 말할지도 고민하는 편이에요. 사랑을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네요."
- '리틀잭'은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록과 클래식의 경계를 오가는 넘버로 풀어낸다. 4인조 라이브 밴드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 라이브 바에 온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뮤지컬과 달리, 이건 가수가 노래하는 플랫폼으로 진행돼요. 관객이 잭의 공연을 오랜만에 보러 왔다고 생각하고 공연에 오르니 연습할 땐 오르지 않았던 텐션이 저절로 올라요. 연습할 땐 연출님 얼굴만 보거나 벽이랑 창문만 보다가 관객들을 보고 하니 재밌더라고요. 밴드로 관객을 만나고 있어서 즐거운 것도 있고요. 찾아주신 팬분들을 보며 힘을 많이 받아가고 있어요."
- 줄리가 다섯 명이나 된다.
"줄리마다 다른 리액션을 줘서 저 역시 다르게 다가가게 돼요. 찰나의 순간들이 달라지죠. 연습할 땐 줄리한테 많이 집중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줄리와 만나요. 특히 소대에서 줄리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감성이 올라와요. 평소에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줄리의 넘버는 연습할 때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줄리와 함께 부르는 'YOU'라는 넘버를 가장 좋아해요.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나오는 노랜데, 뭉클하면서도 눈물이 날 거 같아요. 이 노래를 부를 때 너무 좋아요."
- 배우의 힘이 중요한 작품이다. 설레고 행복하면서 안타까울 수도 있는 사랑 이야기를 배우가 자문자답하며 풀어나가는 극이다. 배우의 재취가 발휘되어야 한다. 그래서 '리틀잭' 이후 많이 성장할 거 같다.
"연기는 리액팅이란 말이 있어요. '리틀잭'은 상대 배우보다 관객하고 리액팅하는 장르예요. 그래서 대본에 나온 유머인데, 관객들이 유머인지 모를 땐 민망해요. 하하. 배우는 꾸준한 곡선으로 성장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저도 모르는 사이 쌓여가는 직업이기 때문에 '리틀잭'으로 분명히 성장할 거예요. 이렇게 무대에 오래 있는 작품도 많이 없었어요. 무대가 아주 편해질 거 같아요."
-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시점에 가장 고민이 되는 건 무엇인가.
"좋았던 건 제가 맡은 캐릭터가 모두 다르다는 거예요. 노래 장르도 다양하고요.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다만 연기라는 건 정답이 없는 장르예요. 누구 눈엔 좋을 수도 있고, 누구 눈엔 나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발전할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돼요. 정체됐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무작정 많은 작품을 한다고 발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거든요. 방법론으로 연기할 수 없기도 하고요. 어떤 작품을 만나도,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