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임대차법 덕에 가격 인상 억제"
시장에선 "신규 전세 줄며 공급 부족 초래"
서울 아파트 전셋값 107주째 상승
이달 31일이면 새 임대차보호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지 1년을 맞는다. 정부는 ‘세입자 보호 강화’라는 임대차법 성과를 치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임대차 시장 상황과 너무 괴리된 인식이란 지적이 나온다. 무주택 서민들은 전세 부족과 임대료(전·월셋값) 급등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부는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은 애써 외면한 채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법(임대차 3법) 시행으로 임차인(세입자) 다수가 제도 시행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그만큼 크게 제고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내세우는 근거는 임대차 계약 갱신율과 임대료 증액률이다. 임대차2법으로 기존 세입자는 최장 2년 간 계약 연장을 보장받을 수 있게 돼서다.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사용하면 임대료도 최고 5%밖에 올릴 수 없다. 홍 부총리는 "전월세상한제 적용으로 (6월 신고된 전월세) 갱신 계약 중 76.5%가 인상률 5% 이하 수준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임대차법) 도입 초기 일부 혼선은 있었으나 임대차 신고제 자료를 토대로 볼 때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으며, 제도 도입의 목적인 임차인의 거주 기간 연장 및 낮은 임대료 인상률 등이 확인됐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시장의 일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기존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은 강화됐지만 새로 전셋집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14.1로 지난해 같은 달(97.9)보다 16.2포인트(P) 높아졌다. 전세수급지수가 100을 웃돌면 공급 부족을, 100을 밑돌면 수요 부족을 의미한다. 높으면 높을수록 공급 부족이 더 심하다는 뜻이다. 임대차(전월세) 물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계약 갱신을 택하는 기존 세입자가 늘면 신규 계약을 할 수 있는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대료도 오름세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07주 연속 상승 중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 중간값(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위치한 값)은 지난해 6월 4억3265만 원에서 지난달 4만6498만 원으로 7.4% 올랐다. 임대차2법 때문에 한 번 전월세 계약을 맺으면 최장 4년 동안 임대 수익률이 제한된다는 불안 심리가 집주인 사이에 퍼지면서 신규 임대료를 이전 시세보다 높게 부르고 있어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저렴하게 전세 재계약을 하더라도 2년 후엔 높아진 시세대로 새로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학 교수는 "아직 임대차법 공과를 이야기하기에 이른 과도기"이라며 "적어도 (임대차법이 보장하는) 4년 계약 사이클이 지나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차2법이 발의되자마자 임대료 상승 우려가 나왔던 상황에서 정부 대처가 미온적이었단 지적도 있다. 정부가 임대차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은 건 임대차법이 제정된 지 3개월이 지난 후인 지난해 11월이었다. 당시 정부는 2022년까지 공공전세주택 11만채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올해까지 입주가 가능한 물량은 4만1000채 정도에 불과하다.
그 사이 정부와 여당은 토지거래허가제(실사용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만 부동산 취득을 허락하는 것) 확대, 분양가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2년 이상 그 집에 실거주하도록 하는 제도),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 의무(2년 이상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산 집주인에게만 새 아파트를 주기로 했던 정책) 등 전월세 물량을 줄이는 정책을 계속 쏟아냈다. 이 가운데 이달 정부·여당이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 의무 부여를 포기하자 재건축 아파트에서 전월세 물량이 일제히 늘어났다.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주거안정연구센터장 “‘세입자 보호’ 취지가 무색해진 임대차법을 현실에 맞게 전면 수정하거나 법 적용 대상 주택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