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서 ‘실물자산 기반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 추진
자본시장법 적용돼 잡코인 상장·관리 당국 인가 받아야
금융위원회가 국내에서 거래 중인 코인을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증권성을 띤 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기존 코인을 거래하던 업비트·빗썸 등 가상자산(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STO 앞세워 거래소 영향력 축소 =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 금지 방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ICO는 새로운 가상자산을 만들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초기 개발 자금을 모집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나눠주는 것이다. 금융위는 2018년 ICO 전면금지 원칙을 천명한 이후에도 꾸준히 이와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싱가포르 등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ICO와 관련한 투자판단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금융위는 2019년 ICO 실태조사를 실시, 국내 개발사들이 금융당국의 요청에도 대부분 답변을 거부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금융위는 ICO의 불투명성을 보완한 STO(증권형 토큰, Security Token Offering)를 들여다보고 있다. STO는 코인 발행사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 주식과 유사하다. 이용자는 코인 발행사가 창출한 이윤의 일부를 배당금 등으로 받을 수 있다.
STO가 도입될 경우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본시장법에 정의된 증권은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 등으로 나뉜다. 최근 금융위는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STO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포함시키는 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의 STO 도입으로 ‘잡코인 걸러내기’와 ‘가상자산 거래소 영향력 축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국내에서 거래 중인 약 578개의 가상자산을 종류별로 분류, 선별적으로 제도권에 포섭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변호사는 “STO가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으면 증권신고서를 사전에 신고해 금융위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공모를 해야 하는 만큼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며 “이런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주체들은 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탁원, STO 플랫폼 개념 검증 = 업계는 STO의 도입으로 가상자산 거래소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TO가 증권으로 인정받을 경우, 취급하는 업종을 비롯해 유통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국내에서 증권을 발행하고 유통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매매의 대상이 되는 금융투자상품·회원이 되는 자의 범위를 정해 금융위의 거래소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코스피·코스닥·코넥스가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가 외곽에 있는 사설 가상자산 거래소에 증권 유통 라이선스를 내주겠느나”며 “가상자산 거래소는 비증권형만 유통하라고 제도권 밖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STO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면 예탁결제원에 힘이 쏠릴 것으로 전망했다. 예탁결제원이 증권의 보관, 매매거래에 따른 결제, 보관 중 발생하는 권리행사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만큼 STO를 전면 관리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탁결제원은 지난해 12월 ‘STO 플랫폼 개념검증 수행사업 제안요청서’를 작성, 올해 3월 나라장터를 통해 관련 용역을 공고했다. 예탁원 관계자는 “연구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투데이 취재 결과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추진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시스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STO 증권 인프라망 구축 및 설계를 진행하고, 소액공모와 장외파생상품 등 다른 비상장 증권으로 확장 가능한 분산원장 설계를 주 프로젝트 과제로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용역의) 내용을 언급하기는 어렵다”며 “기존 코인이 증권형이라는 사실이 판독되면 가상자산 거래소의 파이가 뺏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업계에서 가상자산이 증권인지 물어보는 수요가 많아 관련한 기준을 세우는 상황”이라며 “관련 검토가 끝나고 정책 방향이 서야 규범화를 시킬 수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