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공정지도] 성소수자의 공정한 일터...“매일, 일상 곳곳 소외받지 않을 권리”

입력 2021-07-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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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불편함이 소수자 생존 위협해선 안돼

요즘 '공정'은 능력주의 내세운 이들의 무기로 변질

일터에서의 환경ㆍ의식변화 없으면 문제는 반복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지오(왼쪽)와 오소리(오른쪽) 씨가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나를 드러내도 일자리를 잃거나 매일매일 소외되는 감각을 받아선 안 된다.”

시민단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상임활동가들은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성소수자에게 공정한 일터는 성소수자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는 곳”이라며 “성정체성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사회적 신호가 꾸준히 뒷받침해 줘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 필요”=우리가 모를 뿐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시민단체, 사무실 등 다양한 일터에서 함께한다. 사회는 이들을 ‘성소수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차별뿐만 아니라 성정체성을 어쩔 수 없이 숨기면서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과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행성인’은 성소수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5월에는 성소수자 노동권을 전면에 내세워 ‘성소수자와 노동자가 함께 그리는 평등한 일터’라는 토론회도 개최했다.

상임활동가인 오소리 씨는 “성소수자 노동자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노동의 문제와 과제에 대해 말하는 기회를 얻고 싶어서 토론회를 열게 됐다”며 “일반 사기업인 경우, 의사결정권자가 바뀌는 게 쉽지 않기에 노동조합부터 접점을 늘리려고 했다. 연대하면 변화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노동권이 꼭 성소수자에게만 중요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이유로 일터에서 내몰리는 게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모든 사람은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권’은 ‘생존권’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활동가들은 모두가 성소수자를 환대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불편함’이 소수자의 생존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3월, 세상을 떠난 고 변희수 하사와 김기홍 활동가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둘 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군인 혹은 음악 교사로 살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상임활동가인 지오 씨는 “모두에게 주어진 노동현장에서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례”라며 “이는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절박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공정과 차별은 뗄 수 없는 관계”=이들은 오늘날 ‘공정’ 담론이 ‘오염’됐다고 표현했다. 과거에는 공정이 성소수자, 장애인 등과 같은 소수자에게 부족한 기회를 지원하는 기제로 쓰였다면 이제는 ‘능력주의’를 내세운 이들의 무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지오 씨는 능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믿음을 경계하면서 “공정과 차별은 분리해서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공정이라는 말 자체에 ‘차별 시정’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지오(왼쪽)와 오소리(오른쪽) 씨. (고이란 기자 photoeran@)

성소수자의 공정을 말하려면 ‘교차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성정체성이라는 단일한 집단 하나로 보기 쉽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톺아보면, 그 안에서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취업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한 이웃들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성소수자로 받는 차별을 없애는 노력과 동시에 고용 형태나 성별 이분법에 따른 차별 문제 등을 같이 없애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오소리 씨는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렌스젠더는 취업도 안 되고, 승진상에도 불이익이 있다. 성정체성으로 인해 직장 내 불이익을 받는 환경에서 과연 공정을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공정을 말하려면 같은 선상에 있어야 한다. 같은 선에 있지도 않은데 공정을 말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식 바꾸지 않으면 차별은 되풀이”=지오 씨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인식이 바뀌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2007년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기고 나서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 사례 접수가 급증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만들고 그칠 게 아니라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말해도 된다는 신호를 사회가 지속해서 줘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그 신호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소리 씨는 무엇보다도 마음 편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수당, 경조사금 등 배우자의 범위를 동성 파트너로 넓혀도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터에서의 환경이나 인식 변화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소수자들이 노동권을 침해받았음에도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정체성만 감추면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두려움 자체가 노동권을 침해받은 것”이라며 “‘내 동료 중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가시화’하는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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