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권·충격 패' 기대 이하 성적 거둬
"정신적 중압감" 고백…쏟아진 응원
일본에선 나오미 향한 '따가운 시선'도
2020 도쿄 올림픽 최고 기대주로 꼽혔던 미국 체조여왕 시몬 바일스가 기권하면서 스포츠 스타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바일스가 정신적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기권했다고 밝히면서다.
바일스는 27일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결승에서 도마를 제외한 남은 종목에서 기권했다.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은 팀당 3명씩 출전해 도마-이단평행봉-평균대-마루운동 4개 종목을 뛴 뒤 합산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 바일스는 첫 종목인 도마를 뛴 직후 기권했다. 그는 기권 후 점퍼를 입고 벤치에서 동료들의 남은 경기를 응원했다.
당초 미국체조협회는 바일스가 의학적인 이유로 기권했다고 밝혔는데, 바일스는 경기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체적인 부상보다는 심리적 중압감에 의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괜찮다"며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불안정하다. 올림픽에 오고, 대회의 가장 큰 스타가 된 건 견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부닥치면 정신이 좀 나가게 된다"며 "나는 내 정신건강에 집중하고 나의 정신 건강과 안녕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던 바일스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GOAT·Greatest Of All Time)'라 불리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리우 올림픽 당시 그는 여자 기계체조 6개 종목 중 4개 종목(단체전·개인종합·도마·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뛰어난 경기력과 더불어 어린 시절 불우했던 가정사는 바일스를 돋보이는 스포츠 스타로 만들었다. 바일스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조부모의 손에서 컸다. 어머니는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돼 어린 바일스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리우 올림픽 이후 바일스는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지만, 오히려 그 압박감이 짐이 됐다. 바일스는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 어깨에 전 세계의 무게가 얹어진 것 같다"며 "그 압박을 이겨내고 내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알지만, 가끔은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바일스의 고백에 각계각층에서는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심리적 압박을 고백한 그의 SNS 글에는 응원하는 댓글이 2만개 이상 달렸다. 사라 허쉬랜드 미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바일스가 자랑스럽다"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정신 건강을 우선시하기로 한 바일스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심리적 압박으로 경기를 중도 포기한 선수는 바일스가 처음이 아니다. 이번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점화를 맡은 나오미 오사카는 지난 5월 언론 인터뷰를 거부하며 프랑스 오픈 도중 기권을 선언했다.
프랑스 오픈 당시 그는 정신 건강을 이유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조직위가 이를 문제 삼자 결국 기권했다. 오사카는 당시 자신의 SNS를 통해 "2018년 US오픈 이후 우울증 증세로 힘들었다"며 압박감을 털어놓았다.
시몬 바일스와 나오미 오사카 모두 97년생으로 각자 종목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바일스는 이번 기권에 대해 동갑내기 스포츠 스타 오사카에게 영감을 받았다고도 말했다.
오사카 역시 이번 올림픽에서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기대 이하 성적을 거뒀다. 그는 27일 도쿄 아리아케 테니스 파크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테니스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체코의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에게 세트스코어 0대2로 완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 직후 그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이를 두고 28일 "시몬 바일스와 오사카 나오미는 이제 정신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두 스포츠 스타에게 응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나오미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일본 현지에서 반응이 차갑다. 일본의 대표 격으로 개막식 최종 성화 주자로 나선 오사카가 부족한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외신은 이러한 일본 내 비판에 오사카를 향한 인종차별적 시선이 섞여있다고 분석했다. 27일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한 네티즌이 "오사카가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일본어도 제대로 못 한다"라며 "그런데도 왜 성화 점화 주자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적었는데, 이 글에 찬성 표시가 1만 개 이상 달렸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