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협력 아닌 '생존' 영화…류승완 감독의 단단함, 부러웠다"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다. 촬영은 4개월간 올 로케이션으로 이뤄졌다. 여행 금지국인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 수도 라바트, 에사우이라, 카사블랑카 등에서 영화 속 대규모 총격·카체이싱 액션 등이 촬영됐다.
최근 화상으로 배우 김윤석을 만났다. 김윤석은 내전 한가운데 있던 대한민국 대사 한신성 역을 맡았다. 그는 류승완 감독의 꼼꼼한 고증과 준비 과정을 보며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전했다.
"이 분은 신발을 안 벗고 자는 분 같아요. 24시간 현장에서 사는 사람 같았죠. 각각의 스태프가 맡은 역할을 류승완 감독이 조각 맞추듯 끼워나가면서 현장을 이끄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힘있게 밀고 나가는 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거든요. 류승완 감독의 영화 인생이자 실력이라고 봤죠. 그 단단함이 부럽기까지 하더라고요."
아프리카계 흑인이 아닌 모로코에서 수백 명의 흑인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것도 김윤석에겐 낯선 일이었다. 제작진은 촬영에 앞서 아프리카와 유럽 각국에서 오디션을 실시해 수백 명의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소말리아에 모인 배우들은 한국어·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등 통일되지 않은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과제였다.
"기적적이었어요. 소말리아로 수백 명의 흑인 배우를 모으는 것 역시 불가능할 거 같았거든요. 몇 개월간 함께 어려운 영어 대사를 공부하고, NG를 내면 서로 미안해하면서 웃고 나니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외국인 배우가 아닌 함께 출연하는 동료라는 연대의식이 생겼죠."
총알이 빗발치는 내전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장면을 찍으며 시동이 수차례 꺼지고, 차 안이 먼지 구덩이가 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91년식 벤츠를 공수하고, 촬영을 위해 차 지붕을 절단하고 카메라를 설치한 후 다시 붙이는 작업을 거친 스태프의 고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윤석은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카체이싱에 대해서도 "이렇게 실감 나게, 살벌하게 나올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
김윤석은 '모가디슈'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히어로가 등장해 영웅적인 행동으로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실제 있었던 사건,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신성 대사는 능구렁이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고 후회를 하는 인물이에요. 대단히 힘이 있는 사람처럼 멋있게 그려내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캐릭터예요. 평범한 사람도 비범한 순간이 있거든요. 이 평범한 사람들이 위험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 걸 발휘하고 어떻게 힘을 합쳐 나아가는지 보이는 과정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가디슈'는 30년 전 이야기로, 특히 남북의 화합과 협력이라는 소주제를 내세운다. 하지만 결코 신파로 풀어가진 않는다. 김윤석은 "남과 북이 협력해 나가는 게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면서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내란의 한가운데서 고립된 채 외부의 도움도 없이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 안에서 말이 통하는 유일한 두 무리가 만난 거예요. 하룻밤 사이 얼싸안고 부둥켜안은 채 '사랑한다' 하지 않아요. 각 측의 입장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요. 많은 제약과 갈등의 기로에 섰지만, 공동의 목표는 생존이었습니다. 다만 촬영할 때 배우들이 눈물을 흘려서 자꾸 NG가 났어요. 감독은 '눈물은 흘리는 건 관객의 몫이니 당신들이 울어선 안 된다'고 했죠. 나를 온전히 집중시킬 영화 한 편이 나온 거 같아요. 관객의 평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