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발자국 지우기 2050] 긴 여정의 시작

입력 2021-08-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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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끝> 첫발 뗀 ‘탄소발자국 지우기’

6월 14일 시작한 <탄소발자국 지우기, All Together For Tomorrow 2050> 기획이 오늘로 대장정을 마무리합니다. 2월 중순부터 이 기획을 위해 뭉쳤던 6명의 특별취재팀원들이 오랜만에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취재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계속 상향되면서 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판교, 인천, 세종, 경북 구미 등 전국을 누비며 국내외 기후위기 대응을 조명했는데요. 이번 기획의 의미와 성과를 짚어봅니다.

▲정대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배수경, 고대영, 이해곤, 이주혜, 김혜지 ‘탄소발자국지우기’ 특별취재팀 기자들이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배수경= <탄소발자국 지우기, All Together For Tomorrow 2050>은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관한 기록이었습니다. ‘탄소중립’, ‘탄소제로’, ‘기후변화’, ‘기후위기’, 모두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말이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선뜻 나서지지 않는 것. 그럼에도 우리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그걸 우리는 ‘탄소발자국 지우기’란 능동적인 표현으로 압축했습니다.

이번 기획은 전반에 걸쳐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기업의 ‘행동’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 잠재된 반(反)기업 정서 때문에 조심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기업 대부분이 ‘기후변화 유발자’, ‘기후위기 주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꼬리표를 떼기 위해 기업들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 정작 기업에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아준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사회 구성원 개개인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시민 개개인이 적극 행동에 나서줘야 기업과 정부에 대한 감시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폐페트병을 원사 ‘에코론’으로 만드는 티케이케미칼 폴리에스터 공장.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주혜= 첫 회의 때만 해도 ‘탄소발자국’과 ‘탄소 배출 저감’, ‘탄소중립’이란 용어들이 애매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저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꽤 익숙한 단어가 됐다고 봅니다. 정부와 기업, 민간이 탄소 배출 저감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실천하기 시작한 덕분입니다. 이투데이의 ‘탄소발자국 지우기 2050’ 또한 이러한 흐름에 작게나마 보탬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혜지= 탄소발자국 특별취재팀에 배치됐을 때, 속으로 ‘이때다’ 싶었습니다. ‘리사이클 페트병 공장에 가보자’고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업들 사이에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 기조가 확산했고, 제가 담당한 소비재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패션업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든 옷가지를 앞다퉈 쏟아냈는데, 그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구미 폐페트병 리사이클 공장으로 간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김혜지= 막상 리사이클 공장에 가보니 상상하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탄소 0000톤 수거 효과’, ‘페트병 0000개 감축’ 등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국내 리사이클링 산업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었어요. 해마다 확대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방문했던 공장의 전체 페트병 사업 내 리사이클링 사업 비중은 한 자릿 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폐페트병을 해외에서 사다가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일도 상당했답니다. 다른 리사이클링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재생원사를 만들기 위해선 매우 까다로운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고비용을 감수하고 친환경에 앞장서는 산업 현장의 노고에 감동했습니다.

△정대한= 현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폐페트병 분리 수거가 진짜 중요한 것 같네요.△김혜지= 페트병 중에 분리 수거가 제대로 안 돼서 못 쓰는 플라스틱이 굉장히 많다고 해요. 리사이클을 하려면 페트병 품질이 아주 좋아야 하고 성분도 통일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정대한= 사실 폐플라스틱은 ‘가짜’로부터 시작됐어요. 코끼리 상아로 만들던 당구공 원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이를 대체할 재료를 찾던 와중에 발명된 거거든요. 플라스틱은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해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자연상 생분해가 어려워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어요. 플라스틱은 생산량이 연간 약 3억 톤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산화탄소예요. 생산 단계에서 61%, 가공 단계에서 30%, 소각 등 영구폐기 단계에서 9%가 배출된다고 합니다. 탄소를 배출하는 ‘가짜’, 플라스틱이 아닌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진짜’나무를 심어 탄소 줄이기에 나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NHN 플레이허브 옥상에 위치한 서버룸 냉방 공조시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정대한= 제가 경기도 판교에 있는 NHN 데이터센터엘 다녀왔잖아요. 신기술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였는데, 소나무 1265그루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데서 깜짝 놀랐습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운영되는 탓에 뜨거워진 서버의 열을 식히는 게 관건인데요. NHN은 ‘간접기화장치’라는 걸 개발해서 특허까지 냈답니다. 서버실과 외부 사이에 설치한 열교환기로 물을 기화시켜 온도를 낮춘 공기를 끌어들이고, 뜨거워진 열만 외부로 배출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렇게 하면 데이터센터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전력 소모가 큰 냉각장치 소모를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개념이에요. 정말 환경을 위해 IT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셈이죠.

△이주혜= 저는 자동차 업계의 기후변화 대응 동향을 취재했는데요. 사실, 탄소 배출 저감은 일부 선진국 얘기지, 우리에게는 먼 얘기로만 여겨졌습니다. 저 또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는 유럽의 소식을 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의 생각이 틀렸음을 이번 기획을 준비하며 느꼈습니다. 도로에는 친환경 자동차임을 나타내는 하늘색 번호판이 부쩍 늘었고, 취재 중 만난 한 중년 남성은 “5~10년 후에는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끝날 것 같다”고까지 말했거든요. 이번 기획에서 소개한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은 미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으로 꼽히는 철강업계는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신기술을 개발 중이고, 철스크랩 재활용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ESG 및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속속 발표하는 걸 보면서 기업들이 정말 달라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고대영= 저는 금융투자업계 동향을 취재했는데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기업의 ‘진심’을 파악하는 데 투자업계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우리 기업은 환경을 위해 사업하고 있다”며 자료를 뿌려 대지만, 아직 그 성과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그만큼 눈속임도 쉽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미국 뉴욕시가 엑손모빌과 BP 같은 에너지 업체를 고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뉴욕시는 이들 기업이 기후변화에 앞장서는 것처럼 홍보하고 뒤에선 기존 사업과 별다른 차이 없이 행동해 소비자를 속였다고 비난했습니다. 정유사들은 근거 부족으로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는 많아질 겁니다. 기업들이 기후변화 앞에서 쉐도우복싱을 하는 건지 진짜 훅을 날리는 건지 감시하고 평가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현재로선 ‘돈’이 유일한 평가 수단 같습니다. 기업의 자금줄을 쥔 금융사나 자산운용사가 끊임없는 실사를 통해 탈탄소 경영과 관련한 구체적인 수치를 집계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이런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초고속 전기차 충전소 ‘현대EV스테이션 강동’. 신태현 기자 holjjak@

작은 행동이 큰 변화 물결로

△배수경= 기획을 하면서 본인이나 주위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게 있을까요? 일단, 이투데이는 지난달 언론계 최초로 ‘ESG 경영’을 선포하고, 사내에서 일회용 제품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그걸 계기로 저도 회사에 텀블러를 두고, 점심시간에 들고 나가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이주혜= 저도 그렇고, 제 지인도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려고 텀블러를 들고 다닙니다. 습관이 되니 이젠 자연스러워졌어요. 배달음식을 이용할 때도 일회용 수저는 빼고 주문합니다.

△고대영= 저도요. 배달음식 주문할 때 일회용 수저 포크는 빼 달라고 합니다.

△정대한= 저도 플라스틱 컵을 안 쓰려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게 됐습니다.

△김혜지= 저는 페트병 분리 수거를 전보다 신경 써서 합니다. 텀블러도 갖고 다니고요.

△이해곤= 소고기 대신 돼지나 닭고기를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번에 농축산업계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취재하면서 소의 방귀와 트림, 배설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됐거든요. (소고기가 비싸서 그렇기도 합니다.)

탄소발자국 지우기, 그 긴 여정의 시작

△배수경= 이번 기획 중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북극곰 앞세운 감성팔이는 제발 그만해 달라”는 한 환경단체 관계자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냉정하게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에 옮기자는 의미였는데요. ‘지구의 변호인’을 자처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란 어린 소녀가 어른들의 행동을 촉구하며 학교에 가지 않았을 때, 대부분의 어른은 학교 가기 싫은 어린 소녀의 반항쯤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작은 물결이 큰 파도를 이루듯, 툰베리의 용기는 결국 세계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로 ‘행동’의 힘입니다.

△이해곤= 탄소중립을 왜 실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인류가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속 배경인 2040년은 이제 20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탄소중립을 둘러싼 논쟁에 열을 올리기보다 모두가 이 위대한 미션을 다시 한번 생각하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이주혜=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2050년까지 30년이 남았습니다. 먼 미래, 불가능할 것 같은 과제지만, 기획을 준비하며 느낀 ‘기분 좋은 변화’를 보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깁니다. 이투데이 <탄소발자국 지우기 2050>을 읽어주신 모두가 변화에 동참해 주길 바랍니다.

▲2일 ‘이투데이 ESG 경영 선포식’에서 이투데이 김상철 대표, 김종훈 편집국장, 김덕헌 상무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eco is eco’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고대영= 기업의 탈탄소 경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는 만큼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눈속임으로 한 번 뚫린 허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수 있습니다. 이젠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정대한= 2012년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때 내한한 라디오헤드는 한 가지를 요구했답니다. 행사에서 제공되는 모든 물품을 반드시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제품’으로만 해 달라고 주문한 겁니다. 심지어 공연 중 마시는 물도 페트병이 아닌 텀블러나 컵에 달라고 했답니다. 바로 이게 행동이고, 영향력입니다.

△김혜지= 결국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친환경 사업이 탄력을 받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 민간의 설비투자, 국민의 분리 수거 등 노력이 삼위일체되어야 진정 ‘탄소발자국 지우기’가 이뤄질 것입니다.

△배수경= 이번 기획을 통해 모든 이들의 일상에 작은 파문(波紋)이 일길 희망합니다. 더는 삶의 터전을 잃은 북극곰과 불에 타 죽은 코알라를 보고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외침에 세상이 변하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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