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부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과 기소는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은 엄청난 충격을 줬다. 국민들의 ‘사법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법원 내에서 “싹 바꿔야 한다”는 사법 개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반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법관 사회에 굴욕을 안긴 최대 사건으로만 기억됐다.
모든 판사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법관 사회엔 선민의식이 있다. 고위직일수록 이러한 선민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판사들은 속된말로 검사를 ‘칼잡이’라고 부른다. 법조계에서 널리 쓰는 속어이지만 사법연수원 시절 성적순으로 판검사가 나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함의가 조금은 다르다.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로 달라지긴 했으나 과정이 복잡해졌을 뿐 판검사들 사이에서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얘기는 통용된다.)
소속도 다르고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판사는 검사보다 높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검사가 기소하면 판사가 선고를 내리는 재판 절차를 보면 관계 설정이 쉽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기소는 이러한 높낮이가 완전히 뒤바뀐 사건이다. 당시 일부 판사는 검찰의 지나친 수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국민감정과 거리가 먼 얘기였지만 두고 보자는 식의 거친 언사가 있기도 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알만한 사람들끼리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비판으로 읽혔다.
3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1심이 진행 중이다. 재판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장 큰 417호 대법정에서 꼬박꼬박 열린다.
417호 대법정의 방청석은 150석 규모다. 재판 초기 방청권을 나눠줄 정도로 꽉꽉 들어찼던 이곳을 찾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한다.
1심은 아직 끝날 기미가 없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장기간 1심 재판이 열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인들의 재판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양 전 대법원장뿐만 아니다. 이른바 ‘사법농단’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같이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도 3년 넘게 진행 중이다.
양 전 대법원장 1심이 길어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문건에 대한 검증, 200명이 넘는 증인 등이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핵심 증인으로 신청된 전‧현직 판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출석해 증인신문이 공회전을 거듭했다. 지체 높은 선배의 등에 칼을 꼽는 모양새로 보여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지연 전략도 한몫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올해 2월 법원 정기인사 이후 재판부가 바뀌자 증언의 진술 및 녹음을 다시 들을 것을 요구했다.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것인데, 형사소송규칙에 있는 내용이지만 재판 실무에서는 대체로 생략했다. 그러나 새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정당한 방어권 행사라고 주장했지만 수긍하는 국민은 없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무죄 선고도 사법부를 향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린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5년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 이어 2심도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2심 모두 임 전 부장판사의 부적절한 재판 관여는 인정하면서도 “수석부장판사는 재판에 개입할 권한(직권)이 없는 만큼 남용도 없다”며 직권남용죄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역시도 국민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후배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쳤으나 범죄는 아니다는 의미로 해석돼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전관예우를 보란 듯이 실천하며 제 식구를 싸고도는 법원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커져만 간다. 대법원이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도입을 극렬히 반대하며 노렸던 것이 현재의 결과라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 법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