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인문학 평론가
나는 바다를 굽어보며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크 아탈리는 바다를 가리키며 “자유와 영예와 도취와 비극을 가르친다”면서 “단지 어업, 모험, 발견, 교류, 부(富)와 권력의 공간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바다는 인류 문화의 주요한 원천이다”(‘바다의 시간’)라고 말한다.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기원이 바다라고 말한다. 지구의 생명들이 탄생하는 데 물이 중요한 매개물이었다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한다. 지구에 수천만 종의 생명이 한데 어우러져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물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71퍼센트를 차지하고 그 면적은 3억61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바다에는 13억3000만 세제곱킬로미터의 물이 출렁인다는데, 이 엄청난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대략 44억4000만 년 전 지구 대기를 감싸고 있던 수증기가 비가 되어 지표면에 떨어지며 바다가 생겼다. 이때 탄산가스, 황산염, 염화물이 녹아들고,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이온도 바닷물에 용해되었다.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나왔다. 약 41억년에서 38억 년 전 사이에 단세포 유기체나 원핵생물이 바다에 탄생한 것이다. 5억 4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과 함께 바다에 140종의 식물과 동물이 나타났다. 이들의 활발한 산소 교환 작용으로 새로운 식물, 박테리아, 다세포생물들이 빠르게 불어났다. 지구 생명체의 구성 성분 중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인간의 경우 70퍼센트가 물이고, 인간 혈장의 구성 성분은 바닷물과 거의 같다. 지구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산소의 절반과 인간이 섭취하는 동물 지방의 5분의 1이 바다에서 나온다. 물 없이는 어떤 생명도 살 수가 없다. 지구에서 물이 사라지면 생물들 역시 즉각 사라질 것이다.
독일의 루르 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있던 군터 숄츠는 “철학의 발상지는 바다다. 철학의 근본원리는 물이기 때문이다”(‘바다의 철학’)라고 단언한다. 기원전 600년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는 생명의 근원과 사물의 궁극적 원리를 물에서 찾아낸다. 만물은 변화하는데, 변하지 않은 채로 변화의 제1의적 근거가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는 물이 우주의 근본 원리라는 것, 즉 단 하나의 원리를 물에서 찾으면서 철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탈레스를 따라 물을 보며 사물의 근원과 궁극의 원리를 사유했다. 원리란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이자 만물이 돌아가는 궁극의 귀착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의 이 궁극의 원리를 원리이자 근원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르케’란 말로 표기했다. 물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을 매혹시키고, 고대 동아시아의 철학자들을 사로잡았다. 동양의 철학자들은 물에서 생명의 원리를 찾아내고 물을 자신의 철학 개념을 풀이하는 뿌리 은유로 가져다 썼다. 골짜기를 흐르는 작은 개울물이나 너른 들판을 사행(蛇行)을 하는 큰 강물, 그리고 흐르는 물의 최종 도착지인 바다가 다 이들의 사유를 자극했다. 공자는 물을 오래 관조하면서 물에 대한 사유를 키웠고, 노자는 물에서 도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공자와 노자는 물론이거니와 장자, 맹자, 묵자, 한비자 등도 물의 움직임과 성질을 자신의 철학적 원리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인간이거나 식물이거나 곤충이거나 생명 가진 만물은 물에 기대어 제 생명을 잇는다. 물은 생명이 나고 자라는 기반이자 우주의 근본 원리 중 하나다. 물은 형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느 용기에나 담기며 그 형체를 취한다. 물은 높은 곳을 취하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 물은 다들 높은 자리를 탐할 때 낮은 곳에서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과 같다. 물은 순환하면서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초목의 뿌리를 적신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나 그 이롭게 함을 내세워 제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물은 흐르다가 막히면 싸우지 않고 돌아서 나간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흙탕물도 가만히 놔두면 스스로 정화를 하며 맑아진다. 물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노자는 물의 성질을 두루 꿰뚫어보고 물의 덕성을 예찬하며 물이 도와 가장 가깝다고 말한다.
공자가 강가에 서서 물을 찬미하며 “물이여, 물이여!”라고 감탄했다. 이어서 “지나가는 것은 다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그 흐름이 약해지지 않는구나”라고 했다. 제자 자공이 “큰 강물을 바라볼 때마다 항상 관조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입을 열고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물은 덕과 같다. 아래로 흐르면서 꾸불꾸불 돌지만 항상 같은 원리를 따르는 물의 흐름은 의와 같다. 솟아올라 결코 마르지 않고 흐르는 것은 도와 같다. 수로가 있어 물을 인도하는 곳에서 듣는 그 물소리는 반항하는 울음소리 같고, 백 길의 계곡을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은 마치 용과 같다. 수평을 재는 자로 사용할 때의 물은 마치 법과 같다. 가득해서 덮개가 필요 없을 때의 물은 마치 정과 같다. 물은 유순하고 탐색적이어서 가장 작은 틈으로 들어가는데, 이때의 물은 마치 찰과 같다. 물을 거치거나 정화되는 것은 선하게 되는 것 같다. 만 번이나 꺾여 흐르지만 항상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마치 지와 같다. 이것이 군자가 큰 강물을 바라볼 때 항상 관조하는 이유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제자가 맹자에게 “공자가 물에서 본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원천으로부터 흐르는 물은 앞으로 솟아올라 밤낮으로 끊임없이 흐른다. 그 흐름은 빈 곳을 채우고 다 채운 다음 앞으로 나아가 바다로 흘러간다. 근원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이와 같으니, 공자가 취한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7, 8월에 비가 모여 도랑이 모두 채워지지만 그 도랑의 물은 서서 기다릴 정도로 쉽게 마른다. 그러므로 타고난 능력보다 과분한 명성을 얻는 것을 군자는 수치스럽게 여긴다”라고 대답했다.
물의 여러 덕성을 눈여겨보았던 노자는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골짜기 물을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골짜기의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물에서 도의 원리를 투시하고 자신의 무위 철학을 펼쳐낸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선언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도덕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경구이다. 노자의 무위 철학을 한 줄로 함축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좋은 걸 찾기는 어렵다. 노자의 도는 한 마디로 물의 도다. 물은 가장 유약한 것이면서 가장 강한 것을 이기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높은 데에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 물은 무위에 따르며 억지로 함이 없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나 다투지 않는데, 다투지 않음은 도의 기본 형질이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