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도덕감정론과 수탁자자본주의

입력 2021-09-08 13:46수정 2021-09-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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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꼽았다. 도덕감정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이다. 자신의 행위를 타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라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행위는 자신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그것은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 내부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이자 조정자이다. 이 ‘공정한 관찰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기애(Self-love)에 의해서 자연히 빠지게 되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이성과 양심의 원칙을 믿었다. 인간은 서로 연결된 존재로 서로의 행복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희로애락을 공감(Sympathy)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Selfish)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인간의 천성(Nature)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칙들이 존재한다. 이 원칙들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되며, 단지 그것을 지켜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이 필요하다”는 것. 선과 악은 이렇듯 이성적이기 이전에 정서적이다. 사회나 국가를 흔히 이성 공동체로만 알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정서공동체가 실재한다는 탁월한 통찰이다. 이렇듯 인간은 이성과 양심과 도덕에 의해 기쁨과 슬픔, 쾌와 불쾌감을 느끼며 서로의 인생을 공감하며 살아간다. 법감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법과 제도, 사회 질서도 근본적으로는 정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의와 질서, 공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스미스는 “자신의 불행을 막기 위하여, 심지어는 자신의 파멸을 막기 위하여 이웃을 파멸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보편적 도덕감정’을 통한 ‘자기통제’와 ‘신중’을 중시하는 이유다. 사회 문제는 종교적으로 승화된다. 그는 “신의 섭리(Providence)는 대지를 소수의 귀족 지주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 분배에서 제외됐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망각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신은 인류 모두를 살핀다. 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우린 스스로 관찰한다.

관찰은 시선이다. 시선은 사물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장소의 철학을 전제하므로 실은 관점과 통한다. 관점에는 바라보는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을 ‘일반준칙’ (General Rule)으로 설정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지속해서 관찰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타당하고 적정한가에 대한 어떤 일반준칙을 형성한다. 타인의 어떤 행위는 우리의 자연감정(Natural Sentiments)을 격분하게 한다”고 했다. 이러한 일반준칙은 사회의 각종 미담이나 모범 사례들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 제도와 손해배상, 형벌들을 낳게 한다. “우리는 자신을 가증스럽고, 경멸스럽고 또는 처벌받아 마땅한 대상, 즉 우리가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모든 감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그런 행위는 마땅히 피해야 한다는 일반준칙을 스스로 세운다”는 스미스는 경제학자가 아닌, 도덕철학과 일반 원칙, 법 제도와 사회질서를 강조하는 ‘정치경제학자’였다. 그는 “불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괴한다. 힘과 폭력에 의지해서라도 어떻게든 중지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기후위기와 인권 문제 같은 전 지구적 이슈가 대두되면서 자본주의는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사회 공통의 이슈이므로 공동의 대처가 요구된다. 모든 국민이 납부하는 연기금들과 블랙록 등 거대 해외자산운용사들 이러한 이슈들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고 이러한 움직임은 확산세에 있다. 인류가 ‘돈의 힘’을 활용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상생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즉,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지나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 시대가 온 것이다. 제임스 홀리(James P. Hawley) 세인트메리대 교수는 이들을 ‘보편적 소유자’(Universal Owner)라고 불렀다. 기업은 초기에는 창업자가 경영하지만(경영자 자본주의), 자본시장이 고도화되면서 M&A나 주식연계형 채권(CB, BW), 재무적 투자(Financial Investor)와 전략적 투자(Strategic Investor)가 활성화되면서 주주들이 분산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주주자본주의)된다. 이후 금융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주식의 소유권이 연금이나 뮤추얼 펀드 같은 ‘다양한 수탁 기관들’에게 집중되는 단계가 온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제시한 공정한 관찰자의 보편 정서와 일반 준칙은 수탁자 자본주의에서 보편 소유자와 ESG, 투자 기관이 스스로 정의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로 부활하고 있다. 수탁자들은 투자금을 운용할 때 주의를 기울여(주의의무) 충실하게(충실의무) 신뢰할 수 있도록(신인의무) 관리해야 할 책임(Accountability)이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Transparency)해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재무적 영향과 사회적 가치를 지켜보기 위함이다.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인 21세기 국민은 자신의 미래를 이렇게 스스로 바라본다.

▲제임스 홀리 교수의 저서, 수탁자자본주의의 도래 출처=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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