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학교 기업경영트랙 교수
ESG 열풍이 국내 재계의 화두가 된 이유는 수많은 언론과 보고서를 통해 언급된 바 있어 그 중요성을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은 정부의 역할에서 기업의 역할로 확대되고 있고, 투명한 이사회 구조와 감사위원회 구성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대변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기업에서 ESG의 필요성이 거론되자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ESG와 기업 성과의 인과관계 검증 등 ESG의 실질적 효과에 관한 다양한 결과가 제공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경영전략 및 재무회계 연구에서 나타난 보편적인 결론은 ESG 활동이 기업의 재무성과 및 신뢰도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문제는 국내 최대 이슈가 된 ESG의 중요성이 1년 가까이 부각된 반면 실제 ESG와 관련되어 기업이 환경·사회적 책임에 대해 어떤 역할을 실행했는지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이사회 구성 및 운영 방식을 어떻게 개선했는지, 그 실행 방안 또는 실천적 행동에 대한 뚜렷한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재계에 사회적 책임(CSR) 열풍이 일어 사회적 책임 부서가 민간, 공공 조직을 가리지 않고 신설되었다. 그리고 2010년,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주도한 공유가치 창출(CSV)은 또 다시 국내에 사회적 가치의 화두를 몰고 와 CSV 부서, CSV 위원회가 국내 기업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
10년마다 CSR, CSV, ESG 등 사회적 책임, 사회적 가치 트렌드가 창출되었고 기업도 여기에 발맞추어 그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여전히 기업이 이와 관련하여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다수의 기업이 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위원장 대부분은 ESG 경험이나 경력과 무관한 교수, 법조인, 관료, 언론인이 맡고 있다.
위원회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실천적으로 실행한 인물이 위원장이 되어 기업의 ESG 방향성을 주도하는 것이 맞다. 경험과 경력이 무관한 인물이 ESG를 주도한다면 위원회는 무의미한 논의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CSR, CSV와 관련된 기존 위원회도 기업 내부에서 유명무실한 역할에 그친 선례도 있다.
그러므로 ESG가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위원회를 신중히 그리고 공정하게 구성해야 한다. 국내 기업은 위원회를 설치할 때마다 해당 위원회의 방향과 무관한 관료, 법조인, 언론인, 교수 등에게 위원회를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투명하게 ESG의 실천 가능성을 보다 높일 수 있는 인물을 공개 선발해야 한다.
또한, 더 많은 학습을 통해 업종과 기업 특성에 맞게 ESG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현재의 지표는 기술집약적 기업에 유리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전통적 산업인 제조업과 유통업에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다. 불균형한 지표로 인해 미국 금융계의 펀드매니저들이 기업의 ESG 정보를 100% 신뢰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5년까지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기업, 2030년까지 거래소의 모든 기업은 ESG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수동적인 위원회 운영이 아닌 능동적으로 ESG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방향성을 수립, 실천적 결과를 내놓을 시점이다. 기업의 브랜드 홍보 성격이 강한 ESG에서 내실 있는 ESG로 전환해야 한다.
카카오가 최근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이유도 ESG와 무관하지 않다. 지속가능성을 주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이를 결과로 입증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은 구호만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내년 이맘때 더 많은 기업의 실천 사례가 회자되길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도 지속가능성의 첫걸음을 비로소 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