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별로 관심을 못 끄는 지표이지만, 잠재성장률은 나라 경제의 종합 실력과 발전가능성을 나타내는 척도다.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노동과 자본·자원 등의 생산요소 투입뿐 아니라 기술과 제도의 효율성도 반영하는 성장에너지의 퍼텐셜(potential)을 의미한다.
이 지표가 떨어지는 건 성장의 기대치가 낮아지고 경제활력이 쇠퇴하는 노화(老化)의 신호다. 일자리가 줄어 고용이 얼어붙고, 기업과 가계의 소득이 늘지 않는다. 정부 재정수입 감소로 이어져 고도성장시대에 설계된 복지를 어렵게 한다. 연금 등 사회보험 또한 수입보다 지출이 급증해 국민 세금과 부담금을 계속 늘려야 한다. 국민 삶이 더욱 고달파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잠재성장률이 7.5%였다가 이후 계속 하락했다. 한국은행 추계에서 2001∼2005년 5.0∼5.2%, 2006∼2010년 4.1∼4.2%, 2011∼2015년 3.0∼3.4%, 2016∼2020년 2.7∼2.8%(2019∼2020년은 2.5∼2.6%)로 곤두박질쳤다. 한은이 이번에 재추정한 결과는 2016∼2020년 2.5∼2.7%(2019∼2020년은 2.2%)이고, 2021∼2022년이 2% 내외다. 5년 단위로 1%포인트(p) 안팎씩 낮아졌다.
잠재성장률 추락도 그렇지만, 실질 GDP(국내총생산)성장률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가파른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질성장률에서 잠재성장률을 뺀 수치(GDP갭)가 플러스면 호황이고 그 반대면 불황 국면이다. 줄곧 플러스였던 이 수치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0년대 후반 마이너스로 내려앉았고, 이후 2001∼2010년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이 비슷한 수준으로 반등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2011년 이후 다시 꺾이면서 계속 마이너스 폭을 키우고 있다. 갖고 있는 성장의 기초실력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악성(惡性)의 장기불황이 고착화한 상태임을 뜻한다. 이 흐름을 반전시키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노동과 자본 투입의 감소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내수 감퇴와 함께 주력산업 성숙으로 자본투자도 별로 늘지 않는다. 원인이 그러하면 뒷걸음질치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도 또한 분명하다. 노동투입 감소는 막을 수 없으니, 자본투입을 늘리고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기술의 혁신, 비효율을 제거하는 노동시장 개혁, 성장의 견인차인 기업 관련 규제의 혁파가 돌파구다. 특히 규제개혁이 핵심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투자비용 감소를 통해 노동·자본투입 증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책이 어떤 방향인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몽(迷夢)에서 비롯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 민주노총에 휘둘린 노동편향 노동관계법 개정,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등…끊임없는 기업 두들기기와 반(反)기업 정책으로 일관해 온 게 이 정부다.
5개월 뒤 우리는 차기 대통령을 뽑는다. 이미 선거전은 과열이다. 대통령 되겠다는 지도자들 많고, 저마다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약속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성장의 담론(談論)이 없고 손에 잡히는 비전과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돈 나올 곳은 줄어드는데 당장 표가 될 법한 퍼주기 복지공약만 쏟아낼 뿐이다.
곧 잠재성장률 1%대 추락이 멀지 않은 ‘성장절벽’이다. 국민의 가장 절실한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한국 경제의 진짜 위기다. 곧 성장의 후퇴에 직면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캄캄해진다.
투자 중심 성장전략 재정립, 미래산업 집중 육성, 신기술 개발 역량 확대, 노동시장 개혁 등 많은 정책과제가 제시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단에 앞서 중요한 건 방향의 대전환이다. 쇠락을 막고 우리 국민의 성장DNA를 다시 일깨우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실현 가능성이 의문인 거창하고 획기적인 전략까지 갈 것도 없다. 그동안 경제의 기본과 시장원칙에 거꾸로 갔던 정책방향만 되돌려도 지속가능한 성장의 해법이 보인다. 비정상부터 정상화하지 않고는 망가지는 경제를 살리기 어렵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