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정치경제부장
김 의원이 “부의 대물림 고리를 끊어야 할 때”라고 말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도 역사적으로 부의 대물림은 반복되는 현상이다. 부의 대물림을 출발점이 달라지는 기회의 불공정이라고 말하기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당하게 부를 형성하고 그 부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근간이자 인간 본성이다. 공산주의 사회조차 부의 대물림은 이뤄지고 있다. 다만 부의 대물림이나 부의 형성이 정당하게 이뤄진 것인지는 사회에서 엄격히 평가해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최근 곽상도 의원 아들이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퇴직금 50억 원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곽 의원 아들은 경찰 출석 때 1억 원이 넘는 고급 외제차인 포르쉐를 타 더 큰 화제가 됐다. 곽 의원이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포르쉐를 탄다는 유언비어를 토대로 비난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조 전 장관의 딸은 준중형차인 ‘현대 아반테’를 타고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설사 조 전 장관 딸이 고급 외제차를 탄다고 해도 비난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재벌 자식이 고급 외제차를 탄다고 비난하지 않지 않는가. 하지만 곽 의원 아들 문제는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 평직원으로 6년 근무하고 퇴직금 50억 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검찰이 ‘대장동 로비 특혜 의혹’사건을 수사하고 있으니 명백히 진실을 밝힐 것이라 믿는다.
올해 공정에 관한 20·30세대의 생각을 듣는 몇 개의 기획을 맡아 그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30대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의 대물림에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부의 대물림 과정의 불공정에 분노할 뿐이다. ‘기업을 대주주로서 물려주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경영 능력도 없는 자식에게 왜 경영까지 맡기는 건지’, ‘돈이 많으면 재산만 물려주면 되지 왜 공부 못하는 자식 좋은 대학에 아빠 찬스를 써가며 보내는지’ 등 이런 것에 20·30 세대는 분노한다. 기업 경영 상속은 그 기업 구성원들에게 피해가 가고, 대학 입시 아빠 찬스는 그 대학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던 누군가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과정에서도 ‘일타강사’에게 배운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차이를 만든 입시제도에 청년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이 있으면 그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교육부의 역할이다. 그동안의 교육부는 대학입시 제도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아빠찬스가 더 잘 통하는 입시제도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 학창 시절 말도 안 되는 과외·학원 금지, 본고사 폐지로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했던 시절이 왜 더 공정했다는 나쁜 생각이 들까.
2013년 초 경주 최부잣집을 취재한 적이 있다. 최부잣집은 당시 지주와 소작인 관계에서 목표초과이익분배제를 시행해 약 500년 동안 부를 유지한 집안이다. 최부잣집은 12대에 걸쳐 부를 대물림했지만 실천적 청부와 상생경영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집안이었다. 최부잣집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등 6가지 가훈을 지켰기 때문에 500년 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흉년이 들면 재산을 풀어 구휼에 신경 쓰고 일제 강점기엔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부의 대물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재산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부의 대물림에 부정이나 위법은 없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부의 조력자들이 관여해 콩고물을 받아먹은 것에 20·30세대가 분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