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제임스 본드는 사실 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젊음과 생명력이 용솟음 치는 여름쯤 만나는 게 맞다. 그러나 코로나는 이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6년 만의 신작인데, 2020년 4월 예정이었지만 총 세 번을 연기하고서야 겨우 개봉할 수 있었다. 제작비도 3억 달러나 들었고 러닝 타임도 시리즈 최장 길이인 163분에 달한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출연한 전작을 모두 본 관객이라면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볼 때 더 큰 재미를 느낄 것이 분명하다.
이번 시리즈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출연작이다.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등의 계보를 잇고 그만의 007의 모습을 보여줬던 작품들의 대단원을 마감한 것이다. 이번 작품은 직전 작인 ‘007스펙트’의 이야기를 이어받는다. 항상 007의 오프닝은 기대감을 갖고 보지만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이번에도 이번 영화의 메인을 이끌어 갈 매들린(레아 세두)을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이번 본드걸로 매들린이 등장하지만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 레아 세두는 자신의 출연작(가장 따뜻한 색, 블루)이 무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명배우이며, 자산이 7조 원에 이르는 프랑스 영화제작사 가문의 금수저 출신이기도 하다.(그래서 그런지 지적이면서 품위가 느껴진다.)
그간 007의 이미지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가장 오래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로저 무어는 항상 여유 만만하고 화려한 본드걸을 거느리며 등장했으며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였다면,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내적으론 예민하고 상처를 잘 입는 본드의 모습은 다니엘 크레이크의 ‘007 카지노 로얄’부터 15년 동안 줄곧 지켜온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본드의 아내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도 이채롭다. 다니엘 크레이크가 보여준 제임스 본드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인간이었으며, 과거의 회한으로 눈물을 보이는 007이었다. 쓸쓸한 그의 모습이 영화 문을 나서는 나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007이 마음까지 아프게 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