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 이 바닥에 다신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원장 의사의 경고는 진짜였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치과의사 혜진(신민아 분)은 과잉 치료를 권하는 원장에게 대들었다가 갈 곳이 없어진다. 개원할 돈도 없고, 페이닥터로 받아주는 병원도 없는 상황. 혜진은 심란한 마음에 바다 마을 공진을 찾았다가 그곳에 개원하기로 결심한다. tvN힐링 로맨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다.
작품 속 공진은 차를 타고 30분이나 가야 치과가 있고, 산부인과도 하나 없는 시골이다. 건물주 화정(이봉련 분)이 공진에 치과가 생기길 늘 바랐다며 저렴한 가격으로 혜진에게 세를 내줄 정도다. 작품의 주 서사는 혜진과 홍반장(김선호 분)의 로맨스이지만, 지방의 의료 공백을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혜진의 치대 동기들은 공진에 개원한 혜진을 은근히 무시하고, 강남에 개원한 친구는 세금을 많이 낸다며 얄밉게 자랑한다. 가장 상징적인 건 출산 장면이다. 태풍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씨 속에 임산부 윤경(김주연 분)은 양수가 터지고 만다. 한데 거센 날씨로 도로가 모두 끊겨 병원으로 갈 수 없게 되고, 결국 윤경은 혜진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아이를 낳는다.
드라마처럼 농어촌 지역에는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중 분만실이 없는 지자체는 올해 8월 기준 54곳에 달한다. 산부인과가 아예 없는 지자체도 7곳이나 된다. ‘갯마을 차차차’의 주요 촬영지인 울산 북구도 산부인과는 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분만실이 없다. 이는 결국 출산율을 더 낮아지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급할 때 환자들이 찾는 응급실 역시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크다. 서울과 제주, 강원 지역의 응급의료시설 평균 접근 거리는 10배가 넘게 차이 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의 응급의료시설 평균 접근 거리는 2.94㎞인 반면, 제주는 22.29㎞ 강원도는 22.32㎞로 나타났다. 경상북도 역시 20.25㎞로 서울과 10배 가까이 차이난다. 응급실과의 거리는 결국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큰 의료 사각지대를 만든다.
의료 인력 부족도 문제다. 의사, 간호사 모두 부족한데 특히 지방에 전문의 부족현상이 두드러진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심평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방 권역응급의료센터 절반 이상이 주요 진료과 전문의를 필요만큼 두지 못했다. 24개 센터 중 13곳이 흉부외과·산부인과 등 주요 진료과 전문의가 5명도 채 안된다.
이러한 의료 격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그나마 없는 병상과 자원을 감염병 대응에 투입하면서 더욱 커졌는데, 근본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한국은 기본적으로 민간 의료 의존도가 높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낮은 수가로 운영이 어려운 필수과는 지방에 있는 민간 병원이 품기 어렵다. OECD 평균에 훨씬 못미치는 부족한 의사 숫자도 문제인데, 그 의사들은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에 몰린다.
정부는 2018년부터 지역 거점 공공 의료를 확충하겠다고 나섰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3년 전 정부가 전국을 70개 지역으로 나눠 역량 있는 병원이 없는 지역에 공공병원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새롭게 들어서는 병원은 서부산의료원, 대전의료원, 진주권 공공병원 등 3곳뿐이다.
여기 더해, 지난해 7월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은 현장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의료계는 현행 수가 체계를 개선하지 않은 채 의사 배출만 늘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있다. 결국 재원을 마련해 지역 거점 공공병원을 더 짓고, 많은 의료 인력이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방법 밖에 없다.
‘갯마을 차차차’는 결말까지 2화를 앞두고 있다. 두식과 혜진의 사랑을 가로막는 홍 반장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는 가운데, 혜진이 서울의 임상 교수 자리를 제안 받는 이야기가 전개됐다. 그가 사랑을 뒤로 하고 공진을 떠날 지 공진에 남아 사랑을 이룰 지 주목되는데, 물론 혜진은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 다운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 확실한 지원을 마련해 젊고 능력있는 의사를 지방으로 이끌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림 같은 외모에 다정함까지 겸비한 홍 반장을 마을마다 도입(?)하는 것보다야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