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차장
“열렬 환영 정몽구 회장”
2012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중국으로 ‘현장경영’에 나섰습니다. 그가 거쳐 가는 곳곳에는 붉은색 현수막이 그를 환영하고 있었지요.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베이징과 옌청에 공장을 3곳씩 뒀고, 중국 전용차를 뽑아내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현대차그룹에 중국은 아픈 손가락이 됐습니다. 현지 공장 두 곳을 폐쇄하거나 매각할 만큼 상황이 나빠졌거든요.
그 사이 세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2008년 리먼 쇼크에서 시작한 이른바 ‘뉴노멀’은 글로벌 주요국 사이의 무역과 외교 정세를 뒤엎었습니다. 자국 우선주의가 1순위가 됐고, “우방은 우방인데요. 돈은 내셔야 돼요”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겁니다.
자동차 산업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19세기 말,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내연기관 차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2차 대전을 앞두고 미국 포드는 대량생산 체제를 시작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100년쯤 자동차 산업의 기득권을 쥐고 있었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 이야기가 달라진 것이지요.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이후, 먼 나라 이야기였던 친환경 차들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전기차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국은 혈안이 돼 있습니다. 중국은 자국산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SK 배터리를 쓰는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는 자칫 중국시장에서 보조금을 못 받을 뻔했습니다. 아직 정부 구매보조금은 전기차 판매에 절대적이거든요.
다행히 SK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합작사를 세웠고, 이 과정에서 지분 49%를 보유하는 대신 현지 업체에 51%를 넘겼습니다. 가까스로 SK 배터리는 중국 배터리가 됐고, 아이오닉 5는 현지에서 보조금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미국은 또 어떤가요. 배터리 구성품의 50% 이상을 미국에서 제조했을 때만 보조금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한 마디로 “보조금 받고 싶으면 미국에 공장 지으세요”라는 의미지요.
그뿐인가요. 전미 자동차 노조에 가입한 자동차 공장 조립분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합니다.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미국 빅3 공장에 특혜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따져보면 우리가 봤을 때 특혜이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그들을 비판할 명분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주요 자동차 시장이 그렇게 자국 산업을 보호할 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생계형 1톤 트럭 운전자에게 환경개선부담금과 경유세를 뜯어내 테슬라 구매 보조금을 주기에 바빴던 이들이니까요.
논란이 거세지니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6000만 원과 9000만 원 등으로 나눠 차등화했는데 이 역시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중국산 저가형 전기차가 쏟아지면 어떻게 감당할는지도 걱정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글로벌 무역 정세에서 약소국입니다. 내다 팔아야 할 물건은 많은데, 좁디좁은 우리 시장마저 지키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작은 시장은 지키면서도 더 많은 물건을 내다 팔아야 하는 게 새로운 기준, 뉴노멀이거든요.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