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명암 드리운 노태우 발자취… 민주화 후 첫 군인 대통령

입력 2021-10-26 16:38수정 2021-10-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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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연합뉴스)

12·12 군사 쿠테타 주범이자 5공 정권 2인자…. 한국 현대사의 명암을 드리운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일컫는 말이다. 민주화 후 첫 군인 대통령으로 영욕의 삶을 살았던 그가 이날 영면하면서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2015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2018년) 등과 함께 1987년 체제를 상징하는 ‘1노(盧)3김(金)’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32년 12월 4일 대구 출생의 노 전 대통령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육사 11기로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육사에서 필생의 정치적 동지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동기로 만났다. 육군 9사단장이던 그는 육사 내 사조직인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1979년 12월 12일 육사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이후 신군부 2인자로 떠올라 제8대 수도경비 사령관, 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육군대장으로 예편, 1981년 정무 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무2장관, 초대 체육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쳐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육군사관학교 재학 당시 오성회 동료들과 기념촬영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아래 왼쪽).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민정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해 이른바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왔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시행된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됐다.

‘보통사람 노태우’, ‘이 사람 믿어주세요’를 선거 구호로 내세워 그를 상징하는 말로 남았다. 이로써 1988년 제6공화국으로 불리는 노태우 정권이 출범했다. 취임 이후 ‘5공 청산’에 대한 거센 요구를 받았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그해 치러진 13대 총선의 결과는 여소야대였다. 노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공화당을 합치는 기습적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안으로는 국민통합, 밖으론 북방외교를 힘쓴 노 전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성과를 내며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는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면을 장식했다.

‘전두환 후계자’로 평가받으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과 12·12 쿠데타에 가담했으나 전 전 대통령과는 이후 행보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 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추징금 2628억 원을 완납했으며 아들 노재헌 씨가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 조화를 보내고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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